[본문] 밀성/밀양박씨 뿌리를 찾아서,제기가 문화재로 등록된 송은, 아당,졸당을 모신 산청군 신안면 진태의 신계서원(新溪書院), 정충사(貞忠祠)와 秦(진) 할아버지 산소 밀성/밀양박씨 뿌리를 찾아서,제기가 문화재로 등록된 송은, 아당,졸당을 모신 산청군 신안면 진태의 신계서원(新溪書院), 정충사(貞忠祠)과 蓁(진) 할아버지 산소 세한재(歲寒齋)
[본문] 기술부영업팀 기술부영업팀
[본문] 밀성/밀양박씨 뿌리를 찾아서, 합천 대병면의 원천재(源泉齋)와 生員公書林(생원공서림), 元亮(원양)의 묘소 밀성/밀양박씨 뿌리를 찾아서, 합천 대병면의 원천재(源泉齋)와 生員公書林(생원공서림), 元亮(원양)의 묘소 합천 대병면의 악견산 아래 송지(松旨 : 성리.) 마을이 있으니, 이씨 조선 초기에 이조참판(吏曹參判)으로 증직(贈職)된 졸당(拙堂) 박총(朴聰) 선생께서 산수경관이 수려(秀麗)하고 절경(絶景)이 좋아, 밀양시 부북면 제대리, 송악마을(못골)에서 노
[본문] 밀성/밀양박씨 뿌리를 찾아서, 합천 졸당공(拙堂公)의 2남 태인공(泰仁公) 희문(熙文)의 산천재(山泉齋), 판사공 彦林(언림) 묘소, 三山(삼산), 梅山(매산), 취화당(翠華堂), 熙泰(희태), 熙相(희상), 해은(海隱), 악견(嶽堅) 선조의 묘소 밀성/밀양박씨 뿌리를 찾아서, 합천 졸당공(拙堂公)의 2남 태인공(泰仁公) 희문(熙文)의 산천재(山泉齋), 판사공 彦林(언림) 묘소, 三山(삼산), 梅山(매산), 취화당(翠華堂), 熙泰(희태), 熙相(희상), 해은(海隱), 악견(嶽堅) 瑞龜(서구) 선조의 묘소 산천재(山泉齋)란 바로 우리, 졸당(拙堂) 선생의 차남인 태인부군(泰仁府君) 휘(諱) 송재공
[본문] 밀성/밀양박씨 뿌리를 찾아서, 합천 두촌공(杜村公) 承文(승문) 봉산재(鳳山齋), 팔정공 봉서재(鳳棲齋), 密陽朴氏 玉山亭 遺墟碑(밀양박씨 옥산정 유허비), 두촌공 묘소, 찰방공 士林(사림) 묘소, 습독공 儒林(유림) 묘소 밀성/밀양박씨 뿌리를 찾아서, 합천 두촌공(杜村公) 承文(승문) 봉산재(鳳山齋), 팔정공 봉서재(鳳棲齋), 密陽朴氏 玉山亭 遺墟碑(밀양박씨 옥산정 유허비), 두촌공 묘소, 찰방공 士林(사림) 묘소, 습독공 儒林(유림) 묘소 오래 전부터 졸당(拙堂) 선조님의 봉산재(鳳山齋) 묘각(墓閣)이 있었는데, 이를 합천군 용주면 봉기리에 옮겨 짓고, 재실의 이름을 봉
[본문] 밀성/밀양박씨 뿌리를 찾아서, 합천 봉기리 졸당공(拙堂公) 박총(朴聰)의 봉양재(鳳陽齋)와 묘소, 유허비(遺墟碑) 밀성/밀양박씨 뿌리를 찾아서, 합천 봉기리 졸당공(拙堂公) 박총(朴聰)의 봉양재(鳳陽齋)와 묘소, 유허비(遺墟碑) 졸당공(拙堂公)은 1353년6월24일(고려 공민왕 2년 : 高麗 恭愍王2年) 계사 생 (癸巳生)으로, 경상남도 밀양시 부북면 삽포리에서 출생(出生),87세 까지 천수를 누 리고,1439년2월2일 기미년 (己未年,조선 세종대왕 21년:朝鮮 世宗
[본문] DEC100 상패 DEC100 상패
[본문] DEC100(97) DEC100(97)
[본문] DEC100(96) DEC100(96)
[본문] DEC100(95) DEC100(95)
[본문] DEC100(94) DEC100(94)
[본문] DEC100(93년) DEC100(93년)
[본문] (주)한국디지탈 갤러리 모음 한국디지탈에 함께 근무했던 기술부 영업팀들의 '93 ~'97년까지의 DEC100 참가 여행및 부서 MT 갤러리 모음
[본문] 서강79 전자(복학생) 서강전자79(복학생)
[본문] 동창가족모임 동창가족모임
[본문] 밀성(밀양)박씨 태사공-은산공-송은공-졸당공(拙堂公)-두촌공-서림(書林)-후생(厚生) 가계도 밀성(밀양)박씨 태사공-은산공-송은공-졸당공(拙堂公)-두촌공-서림(書林)-후생(厚生) 가계도
[본문] 밀성/밀양박씨 뿌리를 찾아서, 밀양 고법리 송은공(松隱公) 朴翊(박익)의 보본재(報本齋)와 최초로 고려벽화가 발견된 묘소 밀성/밀양박씨 뿌리를 찾아서, 송은공(松隱公) 朴翊(박익)의 보본재(報本齋)와 최초로 고려벽화가 발견된 묘소 시조이신 박혁거세의 43세, 밀성대군의 14세인 은산부원군(銀山府院君) 朴永均(박영균)의 장남이고, 불사이군(不事二君)을 할수 없다고 충절을 지킨 두문동72현, 고려 팔은(八隱)중의 한분이시며, 묘소에서 고려의 벽화가 발견되었었다. 보본재는 송은
[본문] 밀성/밀양박씨 뿌리를 찾아서, 은산부원군(銀山府院君) 朴永均(박영균)의 추원재(追遠齋), 典客令 휘 天卿(천경), 묘소 밀성/밀양박씨 뿌리를 찾아서, 은산부원군(銀山府院君) 朴永均(박영균)의 추원재(追遠齋), 典客令 휘 天卿(천경), 묘소 고려의 문신으로 이부상서(吏部尙書) 대화(大和)의 손자이며 양효공(良孝公) 간(幹)의 아들이다. 익대공신(翊戴功臣)으로 판도판서(版圖判書) . 3재상을 역임하였다. 응천군(凝川君)에 봉해졌다가 뒤에 은산부원군(銀山府院君)으로 추봉되었으며
[본문] 밀성/밀양박씨 뿌리를 찾아서, 영남루 밀성대군 朴彦忱(박언침)의 단소(壇所), 밀성재(密城齋), 익성사(翊聖祠) 밀성/밀양박씨 뿌리를 찾아서, 영남루 밀성대군 朴彦忱(박언침)의 단소(壇所), 밀성재(密城齋), 익성사(翊聖祠) 밀양 영남루에 있는 단소는 밀성대군의 묘소로 추정되는곳이고, 밀성재(密城齋)는 밀양시 내일동 아북산 기슭에 위치한 밀성대군의 재사이며, 익성사(翊聖祠)는 신라말,고려초에 군도(群盜)를 토벌하여 태조(太祖)의 건국사업에 공(功)이 많은, 밀성대군
[본문] 잊혀진 가야왕국 탐사. 창녕의 비화가야(比火加耶) 잊혀진 가야왕국 탐사. 창녕의 비화가야(比火加耶) 1918년에서 1919년에 걸쳐 일본인에 의해 교동고분군의 일부가 발굴 조사되었지만 발굴보고서가 제대로 간행되지 못한 것은 물론, 발굴유물의 대부분은 일본으로 옮겨가고 일부만 국내에 남아있다. 일본으로 옮겨간 유물의 일부분이 현재 도쿄 국립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다고한다.
[본문] 서강79 중국호남성의 권순용 원자바오 총리가 방문한 권순용공장
[본문] 서강전자79 서강전자79
[본문] 눈물젖은 초콜릿 눈물젖은 초콜릿
[본문] 아르헨티나식 바베큐 아사도(Asado) 파티및 하루 세끼 꼬박먹기 아르헨티나식 바베큐 아사도(Asado) 파티및 하루 세끼 꼬박먹기
[본문] 와세다대학 유아교육과 학생들 와세다대학 유아교육과 학생들
[본문] 가을성묘 가을성묘
[본문] 2009년 한국유아체육학회 추계국제학술대회 학술지 2009년 한국유아체육학회 추계국제학술대회 학술지
[본문] 나라를 위해 전사한 병사를 추모하는 미국의 각 시들의 기념하는 방법 일요일에 교회가는 길에서 만난, 나라를 위해 전사한 병사를 추모하는 미국의 각 시들의 기념하는 방법
[본문] 2009년 한국유아체육학회 추계국제학술대회 갤러리 2009년 한국유아체육학회 추계국제학술대회 갤러리
[본문] 샌디에고 미드웨이 항모박물관(San Diego USS Midway Aircraft Carrier Museum)과 라구나 해안(Laguna) 샌디에고 미드웨이 항모박물관(San Diego USS Midway Aircraft Carrier Museum)과 라구나 해안(Laguna Beach) 전장 306.6 m, 선폭 34.4 m, 배수량 67,000 t, 항모운영요원 2,530 명 엔진출력 212,000 HP, 항공운영요원 2,240 명, 최대속도 32 knot, 항공기 65~75 대, 항
[본문] 오랫만의 LA에서 만난 반가운 얼굴 찰스와 덕천 오랫만의 LA에서 만난 반가운 얼굴 찰스와 덕천 8년만에 찾은 로스앤젤레스. 정말 오랬만에 이곳에서 정착하고 있는 덕천이와 연락이 되어서, 회포를 풀었다.
[본문] 산청 생초 계남 등골과 함양 대치 청동골 산소벌초(밀성/밀양박씨 태사공-은산공-송은공-졸당공(拙堂公)-두촌공-서림(書林)-후생(厚生) 밀성/밀양박씨 박씨 태사공-은산공-송은공-졸당공(拙堂公)-두촌공-서림(書林)-후생(厚生) 생초 계남 등골과 청동골 산소벌초 생초 등골의 成望(성망)配,有起(유기) 청동골의 成在(성재), 熙烈(희렬), 宗赫(종혁), 熙錫(희석)
[본문] 어머니와 함께 40년만에 가본 외가가 있던 동네 모실과 고향 선산 벌초(경남 함양군 유림면) 어머니와 함께 40년만에 가본 외가가 있던 동네 모실과 고향 선산 벌초
[본문] 가슴아픈 역사 산청군 산청.함양사건 추모공원 가슴아픈 역사 산청.함양사건 추모공원 6·25 전란 중이던 1951년 2월 7일 육군 11사단9연대3대대에 의해 견벽청야라는 작전명에 따라 지리산 공비토벌 작전이 전개되면서 산청군 금서면 가현, 방곡 마을과 함양군 휴천면 점촌 마을, 유림면 서주 마을 등에서 양민 705명이 희생되었던 바, 이때 억울하게 희생된 영령들을 모신 묘역입니다. 합동묘역조성과
[본문] 가야왕릉탐사 나라잃은 나를 흙으로 덮지말라고한 금관가야의 마지막왕 구형왕릉과 덕양전, 김유신 사대비 가야왕릉탐사 나라잃은 나를 흙으로 덮지말라고한 금관가야의 마지막왕 구형왕릉과 덕양전, 김유신 사대비 가락국의 마지막 왕인 구형왕의 무덤으로 구형왕은 가락국 제10대 임금이며, 532년 신라에 멸망됨으로써 신라 덕흥왕에게 덕으로 나라를 양도하고 이 곳에 와 살다가 묻혔다고 전해온다. 무덤의 형태는 경사진 지형을 이용하여 잡석으로 방형의 단을 이루면서 피라밋
[본문] 가야왕릉탐사 경남 고성의 작은가야가 아닌 소가야 가야왕릉탐사 경남 고성의 작은가야가 아닌 소가야 “고성군은 본래 고자군(古自郡)”이라고 되어 있으며, ≪삼국지 三國志≫ 위서 동이전 한조에는 변한 12국 중 고자미동국(古資彌凍國)이 있는데, 이 두 사서에서 ‘고자’는 동음이자(同音異字)로 표기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런데 ‘고자’의 ‘자’는 성(城)을 뜻하는 우리 말의 고어이다. 그러므로 신라 경
[본문] 가야왕릉탐사 후기 가야연맹의 중심 안라국(安羅國)의 고도, 함안(咸安)의 아라가야(阿羅伽倻) 가야왕릉탐사 후기 가야연맹의 중심 안라국(安羅國)의 고도, 함안(咸安)의 아라가야(阿羅伽倻) 아나가야(阿那加耶), 안라(安羅), 아야가야(阿耶伽耶), 아시량국(阿尸良國) 등 다양한 이름으로 불리고, 전기 가야연맹은 금관가야를 중심으로 42년부터 400년까지 형성된 연합 집단이다. 209년 포상팔국이 쳐들어 오자 신라에 도움을 청하고 물계자 장군의 공으로
[본문] 역사에 나타난 여성의 모습(불공 드리러 가는 고려시대 여성들의 모습을 상상할 수 있는 송은 박익 고법리 벽화) 역사에 나타난 여성의 모습(불공 드리러 가는 고려시대 여성들의 모습을 상상할 수 있는 송은 박익 고법리 벽화) 밀양고려벽화(묘가 사적 459호)밀양시 청도면 고법리 벽화고분으로 송은(松隱) 박익(朴翊. 1332-1398) 묘에서 발견됨. 불공 드리러 가는 고려시대 여성들의 모습을 상상할 수 있는 벽화이다. 출처 한국 양성평등교육진흥원
[본문] 밀양박씨(密陽朴氏) 송은공(松隱公) 박익(朴翊)선생 묘벽화에 대한 자료(고법리 고분벽화에 나타난 의복연구) 밀양박씨(密陽朴氏) 송은공(松隱公) 박익(朴翊)선생 묘벽화에 대한 자료 密陽 古法里 古墳壁畵에 나타난 服飾 硏究 경남 밀양시 청도면 고법리의 밀성박씨 묘역의 능선 경사면에 위치하고 있는 밀양 고법리 박익 벽화묘는 석인상, 갑석, 호석을 갖춘 방형분으로서, 봉분은 가로 6m, 세로 4.8m, 높이 2.3m이며, 내부 석실(길이 .5m, 폭 1m, 높이
[본문] 불사이군(不事二君) 두문동72현, 고려8은 밀양박씨(密陽朴氏) 송은공(松隱公) 박익(朴翊)선생 관련 자료 밀양박씨(密陽朴氏) 송은공(松隱公) 박익(朴翊)선생 관련자료 고려말의 문신이며 학자인 송은 박익(松隱 朴翊)선생(1332, 7, 27-1398, 11, 27)의 휘(諱)는 익(翊), 초명(初名)은 천익(天翊), 자(字)는 태시(太始), 호(號)는 송은(松隱), 본관(本貫)은 밀성(密城), 공민왕조(恭愍王朝)에 문과(文科)에 급제하여 사제소감(司宰少監)을
[본문] 가야왕릉탐사 김해 금관가야의 구산동 고분군, 대성동 고분군 가야왕릉탐사 김해 금관가야의 구산동 고분군, 대성동 고분군 금관가야는 본가야(本伽倻)라고도 한다. 원래 9촌(村)의 장(長)이 있어서 각촌을 다스리다가, 수로왕이 나와서 9촌을 통일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수로는 그때의 군장(君長)이 아니라, 후대로 내려와 본가야 중심의 6가야 연맹체를 결성할 때의 가야의 중시조(中始祖)라는 설(說)도 있다.
[본문] 가야왕릉탐사 김해의 금관가야(金官加耶) 시조 김수로왕릉, 허황옥왕비릉, 구지봉(龜旨峰) 가야왕릉탐사 김해의 금관가야(金官加耶) 시조 김수로왕릉, 허황옥왕비릉, 구지봉(龜旨峰) 일명 ‘수릉(首陵)’이라고도 하며, 금관가야의 시조이며 또한 김해김씨(金海金氏)의 시조이기도 하다.
[본문] 가야왕릉탐사 경북 고령(高靈)의 대가야(大加耶) 박물관, 지산리 고분군 가야왕릉탐사 경북 고령(高靈)의 대가야(大加耶) 박물관, 지산리 고분군 200기가 넘는 크고 작은 대가야시대의 무덤들이 있는데 윗부분은 지름 10m 이상의 대형무덤이, 중간에는 지름 10m 안팎의 중간크기의 무덤이, 그리고 아래쪽에는 작은 무덤들이 주로 모여 있다.이곳 주산의 남쪽 제일 큰 무덤이 금림왕의 능이라고 전해지고 있으며 그 아래로 큰 무덤들도
[본문] 가야왕릉탐사 성산가야(星山伽倻)의 고분군 경북 성주군  성산동고분 가야왕릉탐사 성산가야(星山伽倻)의 고분군 경북 성주군  성산동고분 경상북도 성주 지역에 있던 나라로 벽진가야(碧珍伽耶)라고도 한다. 성주군 내에는 성산동 ·명천동 ·용각동고분군이 있는데 이 중 성산동고분군이 규모가 가장 크고, 또 낙동강 지류의 합류 지점에서 가장 가까운 곳에 있다.
[본문] 가야왕릉탐사 고령가야(古寧伽倻)의 시조이자 함창김씨의 시조 경북 상주 함참의 태조왕릉 가야왕릉탐사 고령가야(古寧伽倻)의 시조이자 함창김씨의 시조 경북 상주 함참의 태조왕릉 42년 낙동강을 중심으로 일어난 여섯 가야(伽倻) 중 하나인 고령가야 태조의 무덤이라고 전해오고 있다.고령가야는 낙동강 일대인 함창, 문경, 가은 지방을 영역으로 하여 세워진 나라로,『삼국유사』의 5가야조와『삼국사기』의 고령군조에 그 이름이 보이고 있다.조선 선조 25
[본문] 신라왕릉탐사 역대 왕릉 중에서 규모가 크고 형식이 완전히 갖추어진 대표왕릉 42대 흥덕왕릉 신라왕릉탐사 역대 왕릉 중에서 규모가 크고 형식이 완전히 갖추어진 대표왕릉 42대 흥덕왕릉(興德王, AD 826-836) 흥덕왕은 임금이 된 첫해에 왕비인 장화부인(章和夫人)이 죽었는데, 11년 동안 죽은 장화부인만 생각하다가 세상을 떠났다고 한다. 왕이 장화부인의 무덤에 합장하기를 유언하여 흥덕왕릉에 합장하였다고 하며, 능의 주변에서 ‘興德’이라 새겨진
[본문] 서강대 경희동문 서강대 경희동문
[본문] 잊혀진 왕국 금관가야(金官加耶), 대가야(大加耶), 소가야(小加耶), 아라가야(阿羅加耶), 고령가야(古寧伽倻), 성산가야(星山伽倻), 비화가야 잊혀진 왕국 가야(伽揶) 연맹체 김해의 금관가야(金官加耶), 고령(高靈)의 대가야(大加耶), 고성의 소가야(小加耶), 함안의 아라가야(阿羅加耶), 상주의 고령가야(古寧伽倻), 성주의 성산가야(星山伽倻), 창녕의 비화가야(比火加耶)
[본문] 입학 30주년 기념 청평에서의 1박2일 대학입학동기들 모임 입학 30주년 기념 청평에서의 1박2일 대학입학동기들 모임
[본문] 신라왕릉탐사 선덕여왕의 뒤를 이은 신라 2번째 여왕, 제28대 진덕여왕릉 신라왕릉탐사 선덕여왕의 뒤를 이은 신라 2번째 여왕, 제28대 진덕여왕릉 제28대 진덕여왕(眞德女王 재위 647∼654, 승만)은 진평왕의 동생인 국반갈문왕(國飯葛文王)과 월명부인(月明夫人)의 딸이다. 당나라와의 친교를 돈독히 하였으며 백제 정벌의 원군을 요청하기도 하였다. 국내적으로는 명장 김유신으로 하여금 국력을 튼튼히 하여 삼국통일의 기틀을 다졌다.
[본문] 신라왕릉탐사 십이지신상중에 북쪽에 있는 쥐,소,범,토끼,돼지만 남아있는 제 41대 헌덕왕릉 신라왕릉탐사 십이지신상중에 북쪽에 있는 쥐,소,범,토끼,돼지만 남아있는 제 41대 헌덕왕릉 제41대 헌덕왕(憲德王, 재위 809∼826, 김언승)은 왕위에 있는 동안 김헌창의 반란을 평정하였으며, 당(唐)나라와 원만한 외교관계를 유지하였고, 국방에 힘써 패강장성(浿江長城)을 쌓았다. 고려,조선 시대의 기록에 북천이 범람하여 능이 훼손되었다고 전하며, 19
[본문] 신라왕릉탐사 신라 왕릉 가운데 가장 크고 화려한 모습의 38대 원성왕의 괘릉 신라왕릉탐사 신라 왕릉 가운데 가장 크고 화려한 모습의 38대 원성왕의 괘릉 괘릉이란 ‘걸어놓은 능’이라는 뜻으로, 관을 묻을 때 물이 나와서 돌기둥을 받치고 그 위에 시신을 넣은 관을 올려놓았다는 데서 유래한 이름이다. 제38대 왕(재위 785∼798, 김경신)의 능으로 추정되고 있다. 독서삼품과를 두어 인재를 등용하였고 김제 벽골제를 증축하여 농사를
[본문] 신라왕릉탐사 벌초도 않된 상태로 방치되고 있는 43대 희강왕릉과 44대 민애왕릉 신라왕릉탐사 벌초도 않된 상태로 방치되고 있는 43대 희강왕릉과 44대 민애왕릉 43대 희강왕(僖康王, 재위 836∼838, 김제륭/김제옹)은 원성왕의 손자인데, 흥덕왕이 자식 없이 죽자 재위하였으나, 상대등 김명이 난을 일으키자 자살하였다. 44대 민애왕(閔哀王, 재위 838∼839, 김명)은 희강왕을 살해하고 스스로 왕위에 올랐다가, 재위 1년 만에
[본문] 신라왕릉탐사 35대 경덕왕릉 신라왕릉탐사 35대 경덕왕릉 제35대 경덕왕(景德王 재위 742∼765, 김헌영)은 효성왕의 친동생으로 왕위를 계승하여 국가의 제반제도를 중국식으로 개편하고, 지방제도를 완비하였다. 굴불사(掘佛寺)와 불국사를 창건하였으며, 황룡사 대종과 성덕대왕 신종도 만들었다. 능은 맨 아래에 지대석을 놓고 면석과 기둥 역할을 하는 탱석을 교대로 세우고, 탱석 두 칸
[본문] 신라왕릉탐사 49대 헌강왕릉과 50대 정강왕릉 신라왕릉탐사 49대 헌강왕릉과 50대 정강왕릉 제49대 헌강왕(憲康王, 재위 875∼886, 김정)은 경문왕의 태자로서 문치를 잘 하였으며 이 시기에 처용무가 시작되었다고 한다. 왕위에 있는 동안 태평성대를 이루었는데, 거리마다 노랫소리가 끊이지 않았고 일본왕이 사신을 보내 황금을 바칠 정도였다고 한다. 제50대 정강왕(定康王 재위 886∼887, 김황)
[본문] 신라왕릉탐사 못오도록 꼭꼭 숨겨둔 32대 효소왕릉과 33대 성덕왕릉 신라왕릉탐사 못오도록 꼭꼭 숨겨둔 32대 효소왕릉과 33대 성덕왕릉 효소왕(재위 692∼702, 김이공)은 시장을 개설하여 경제력을 확충하고, 당나라/일본과 문물을 교류하는 등 국력을 키우는 데 힘썼다.성덕왕(聖德王, 재위 702∼737, 김흥광)은 신문왕의 둘째 아들로 형인 효소왕의 뒤를 이어 36년 동안 통치하면서, 안으로는 정치를 안정시키고 밖으로는
[본문] 신라왕릉탐사 45대 신무왕릉 신라왕릉탐사 45대 신무왕릉 신라 제45대 신무왕(재위 839, 김우징)은 원성왕(元聖王)의 증손으로 839년에 장보고(張保皐)의 힘을 빌어 민애왕(閔哀王)을 죽이고 왕위에 올랐으나 그 해에 병(病)으로 죽었다.『삼국사기, 三國史記』에 의하면 "왕이 돌아가시자 제형산(弟兄山) 서북쪽에 장사지냈다."고 하였으나 이 무덤을 가리키는 것인지는 명확하지 않다.
[본문] 신라왕릉탐사 52대 효공왕릉 신라왕릉탐사 52대 효공왕릉 효공왕(재위 897∼912, 김요)은 진성여왕의 뒤를 이어 16년 간 나라를 다스리는 동안 견훤과 궁예가 후백제와 후고구려를 세우고 신라의 영토를 침범하여 나라가 매우 어지러웠으나 평정하지 못하고 돌아갔다고 한다.삼국사기에 "사자사(獅子寺) 북쪽에 장사지냈다."고 기록되어 있다.
[본문] 신라왕릉탐사 드라마때문에 아침부터 붐비는 27대 선덕여왕릉 신라왕릉탐사 드라마때문에 아침부터 붐비는 27대 선덕여왕릉 신라 제27대 선덕여왕(재위 632∼647, 김덕만)은 신라 최초의 여왕으로 첨성대를 만들고, 분황사를 건립하였으며, 황룡사 9층 목탑을 축조하는 등 신라 건축의 금자탑을 이룩하였다. 또 김춘추, 김유신과 같은 인물들을 거느리고 삼국 통일의 기반을 닦았다.
[본문] 신라왕릉탐사 낭산(狼山)의 남쪽 끝에 사다리꼴 44개의 보호석을 가진 제31대 신문왕릉 신라왕릉탐사 낭산(狼山)의 남쪽 끝에 사다리꼴 44개의 보호석을 가진 제31대 신문왕릉 제31대 신문왕(神文王, 재위 681∼692, 김정명)능의 밑둘레에 벽돌 모양으로 다듬은 돌을 5단으로 쌓은 뒤 사다리 꼴로 생긴 44개의 보호석을 설치하였다. 동쪽에는 크고 긴 돌로 쌓은 상석이 있다. 신문왕은 문무왕의 맏아들로 문무왕의 뜻을 이어받아 옛 백제와 고구
[본문] 신라왕릉탐사 선덕여왕의 아버지 제 26대 진평왕릉 신라왕릉탐사 선덕여왕의 아버지 제 26대 진평왕릉 진평왕(眞平王, 재위 579∼632, 김백정)능은 아무런 시설 없이 평야 가운데 있는 것이 특징이다. 진평왕은 남산성(南山城)을 쌓았고, 명활산성(明活山城)을 개축하는 등 경주방위를 중요시하였다. 왕으로 있는 동안 고구려·백제와 싸움이 빈번했으며, 중국의 수(隋)나라·진(陳)나라·당(唐)나라와의 외교에 힘
[본문] 신라왕릉탐사 역사상 가장 위대했던 화랑, 삼국통일의 주역 김유신장군묘 신라왕릉탐사 역사상 가장 위대했던 화랑, 삼국통일의 주역 김유신장군묘 김유신(595∼673) 은 금관가야 마지막 왕인 구형왕의 증손으로 15세에 화랑이 되었으며, 무예와 지략이 뛰어나 나라에 어려움이 있을 때마다 앞장서서 지휘하였다.신라 태종무열왕 7년(660)에 나당 연합군이 결성되었을 때 신라군 총사령관이 되어 백제,고구려를 병합하였다. 문무왕 때에는
[본문] 신라왕릉탐사 안내판이 전혀없는 24대 진흥왕릉, 25대 진지왕릉, 46대 문성왕릉, 47대 헌안왕릉 그리고 서악리 3층석탑 신라왕릉탐사 안내판이 전혀없는 24대 진흥왕릉, 25대 진지왕릉, 46대 문성왕릉, 47대 헌안왕릉 그리고 서악리 3층석탑 진흥왕(眞興王, 재위 540∼576, 김삼맥종)안으로는 화랑제도를 마련하고, 『국사, 國史』를 편찬하였으며, 불교를 장려하여 국력을 다졌고, 밖으로는 가야를 병합하고 한강(漢江) 유역에 한산주(漢山州)를 두는 등 영토를 크게 넓혔다.
[본문] 신라왕릉탐사 29대 무열왕릉(김춘추)과 서악리 고분군, 김양, 김인문의 묘 신라왕릉탐사 29대 무열왕릉(김춘추)과 서악리 고분군, 김양, 김인문의 묘 태종무열왕(재위 654∼661, 김춘추)은 중대(中代)의 첫 진골(眞骨)출신 왕으로 당과 연합하여 백제를 병합하고 통일 대업의 기반을 닦았으나 통일을 완수하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다. 동쪽에 비석을 세웠던 돌 거북 받침돌과 머릿돌이 남아있는데, 무열왕의 둘째 아들인 김인문(金仁問)이
[본문] 신라왕릉탐사 23대 법흥왕릉 신라왕릉탐사 23대 법흥왕릉 법흥왕(재위 514∼540, 김원종)은 지증왕의 맏아들이다. 최초로 병부를 두고 율령반포등 신라의 국가체제를 정비하는 기초를 세웠으며, 금관국합병합병등의 신라의 영토를 크게 넓혔다. 또한 건원(建元)이라는 신라 최초의 독자적인 연호(年號)를 사용하였다. 528에는 불교를 공인하여, 국교로 정하고, 신라 최초의 사찰인 흥륜사(興
[본문] 신라왕릉탐사 세계유산 경주유적지구 경주동부사적지대 17대 내물마립간의 내물왕릉 신라왕릉탐사 경주동부사적지대 17대 내물마립간의 내물왕릉 내물왕(奈勿王, 재위 356∼402)을 모신 곳으로 대릉원의 남쪽이자 월성(月城)에서도 가까운 곳이다. 왕은 김씨로는 두 번째로 왕위에 올랐다. 이후 김씨 성에 의한 독점적 왕위계승이 이루어진다. 내물왕은 중국의 문물을 받아들이고 여러 차례 왜구의 침입을 물리치는 등 고대 국가의 체제를 확립하였다
[본문] 신라왕릉탐사 최초의 김씨왕 13대 미추이사금릉과 천마총, 황남대총등 고분이 있는 대릉원의 황남리고분군 신라왕릉탐사 최초의 김씨왕 13대 미추이사금릉과 천마총, 황남대총등 고분이 있는 대릉원의 황남리고분군 신라 제13대 미추왕(味鄒王, 재위 262∼284)을 모신 곳으로, 대나무가 병사로 변하여 적군을 물리쳤다는 전설에 따라 '죽현릉(竹現陵)'이라고도 한다. 미추왕은 김알지(金閼智)의 후예로 신라 최초의 김씨 왕이며, 여러 차례 백제의 공격을 막아내고 농업
[본문] 신라왕릉탐사 8대 아달라이사금, 53대 신덕왕, 54대 경명왕의 배리삼릉과 55대 경애왕릉 신라왕릉탐사 8대 아달라이사금, 53대 신덕왕, 54대 경명왕의 배리삼릉과 55대 경애왕릉 아달라왕(재위 154∼184)은 백제가 침입하여 백성을 잡아가자 친히 군사를 출동하여 전장에 나아갔다. 그러나 백제가 화친을 요청하자 포로들을 석방하였다. 왜(倭)에서는 사신을 보내왔다. 효공왕(孝恭王)이 자손이 없이 죽자 백성들이 헌강왕(憲康王)의 사위인 신덕왕
[본문] 신라왕릉탐사 7대 일성이사금릉, 경덕사, 6부촌장의 위패는 모신 사당인 양산재 신라왕릉탐사 7대 일성이사금릉, 경덕사, 6부촌장의 위패는 모신 사당인 양산재 신라 제7대 일성왕(逸聖王, 재위 134∼154)을 모신 곳이다. 경주 남산의 북쪽인 해목령(蟹目嶺)에서 뻗어내리는 능선의 서쪽 경사면에 위치하고 있다. 일성왕의 성은 박씨(朴氏)인데 『삼국사기, 三國史記』에는 제3대 유리왕(儒理王)의 맏아들로,『삼국유사, 三國遺事』에는 제3
[본문] 신라왕릉탐사 6대 지마 이사금릉 과 경애왕이 후백제 견훤군대의 습격을 받아 최후를 마친 곳으로 알려져 있는 포석정 신라왕릉탐사 6대 지마 이사금릉 과 경애왕이 후백제 견훤군대의 습격을 받아 최후를 마친 곳으로 알려져 있는 포석정 신라 제6대 지마왕(祗摩王, 재위 112∼134)을 모신 곳으로 남산의 서쪽 하단에 위치해 있다. 능은 밑둘레 38m, 높이 3.4m로 흙을 둥글게 쌓아올린 형태이며 별다른 특징은 없다. 왕은 파사왕(破娑王)의 아들로 태어나 23년 간 재위하
[본문] 신라왕릉탐사 4대 탈해이사금릉 과 숭신전(崇信殿), 경주이씨의 표암(瓢巖) 4대 탈해이사금릉 과 숭신전(崇信殿) , 경주이씨의 표암(瓢巖) 이 능은 신라 제4대 탈해왕(脫解王, 재위 57∼80)을 모신 곳이다. 왜국(倭國)에서 동북쪽으로 1천 리 떨어져 있는 다파나국(多婆那國, 또는 '완하국', '용성국')의 왕비가 잉태한 지 7년 만에 큰 알을 낳았다. 이는 상서롭지 못한 일이라 하여 그 알을 궤에 넣어 바다에 버리니 동해 아
[본문] 신라왕릉탐사 1대 박혁거세, 2대 남해차차웅, 3대 유리이사, 5대 파사이사금의 오릉,숭덕전,알영정, 나정(蘿井) 신라 왕릉탐사 1대 박혁거세, 2대 남해차차웅, 3대 유리이사, 5대 파사이사금의 오릉, 숭덕전,알영정, 나정(蘿井) 다섯 무덤은 신라 시조 박혁거세왕(赫居世王)과 제2대 남해왕(南解王) , 제3대 유리왕(儒理王), 제5대 파사왕(婆娑王) 등 초기의 박씨 임금 네 분과, 혁거세왕의 왕후 알영부인(閼英夫人)의 능으로 전해 온다. 경내에는 혁거세왕의 제향(
[본문] 심수봉의 노래 배경이된 연천 고랑포전투의 현장 임진강 고랑포구를 황포돗배를 타고서 심수봉의 노래 배경이된 고랑포전투의 현장 임진강 고랑포구를 황포돗배를 타고서 임진강에서 유일하게 손쉽게 건널수 있는 고랑포를 두고서 6.25때 있었던 처절한 접전의 현장. 북한의 탱크가 내려온곳이고, 정전회담 마지막까지 양측에서 접전지였다. 1사단과 해병대의 엄청난 희생을 치루었던곳. 이것을 배경으로 하는 심수봉의 노래.
[본문] 경기 연천군 백학면 고랑포리 신라 56대 마지막왕인 경순왕(敬順王)의 왕릉 신라의 마지막 왕 56대 경순왕 라 56대 마지막왕인 경순왕(敬順王)의 경기 연천군 백학면 고랑포리 왕릉 927년 경애왕이 포석정에서 놀다 견훤의 습격을 받아 시해된 후 견훤에 의해 왕위에 올랐다. 전쟁으로 인해 백성이 많은 피해를 입자 군신의 반대를 무릅쓰고, 935년 평화적으로 신라를 고려에 넘겨주고 왕위를 물러난 신라 마지막 왕이다. 무덤의 높이
[본문] 신라왕릉 탐사 준비/정리 자료 신라 왕릉 탐사 준비/정리 자료 56대 임금중에서 왕릉이 확인된 37기의 신라 왕릉을 탐사하기위한 준비 자료
[본문] 큐티저널-2호 큐티저널-2호
[본문] 샤르 드골공항에서 7시간의 Transit시간 활용하기위해서 초스피드 파리 시내관광 샤르 드골공항에서 7시간의 Transit시간 활용하기위해서 초스피드 파리 시내관광
[본문] 할머니생신 할머니의 81세 생신을 축하하면서....
[본문] 스페인에서 가장 큰 투우장인 세비야 마에스트란자 투우장(Maestranza) 과 카르멘 동상 스페인에서 가장 큰 투우장인 세비야 마에스트란자 투우장(Maestranza) 과 카르멘 동상 전쟁에서 싸움을 해야하는 전사들을 훈련시키는것으로 부터 시작된 투우의 박물관까지
[본문] 이슬람 왕조의 왕궁 그라나다(Granada) 알함브라(Alhambra) 궁전 이슬람 왕조의 왕궁 그라나다(Granada) 알함브라(Alhambra) 궁전
[본문] 피스컵 안달루시아 2009 결승전 유벤투스, 아스톤빌라 경기및 시상식모습 피스컵 안달루시아 2009 결승전 유벤투스, 아스톤빌라 경기및 시상식모습 아스톤빌라가 유벤투스를 맞이하여 연장전까지 무승부를 가록하고서, 승부차기로 우승을 했다.
[본문] 세계3대 성당의 하나 세비야대성당(Sevilla Cathedral)의 내부모습 세계3대 성당의 하나 세비야 대성당 (Sevilla Cathedral)의 내부모습 대 예배당(까삐랴 마요르)에 있는 제단의 내용은 예수의 생애가 36개 장면의 성화로 그려져 있는세계 제일의 제단 병풍이며 1.5톤의 금이 소요되었고 이 금은 잉카 마야제국의 금을 사용. 특별한 일이 있을 때 미사를 본다(높이20m). 파이프 오르간...7000개가 넘는 파이
[본문] 이슬람과 스페인양식이 결합된 전형적인 무데하르양식 세비야 알카사르(Alcazar) 이슬람과 스페인양식이 결합된 전형적인 무데하르양식 세비야 알카사르(Alcazar) 이슬람과 스페인 양식이 결합된 전형적인 무데하르 양식 건축물이다. 이슬람 교도에게서 세비야를 탈환한 1248년에 개축되었으며 14세기에 페드로 1세가 다시 대규모로 개축했다. 이때 아름다운 안뜰이 지어지고 화려한 장식이 추가되었다. 숀 코네리가 주연했던 영화 《바람과 라이온
[본문] 세비야대성당과 히랄다탑(Torre de la Giralde) 그리고 황금탑 세비야 대성당과 히랄다탑(Torre de la Giralde) 그리고 황금탑 세비야 대성당은 세계에서 가장 큰 고딕양식의 건축물로 로마의 성베드로 성당, 런던의 세인트 폴 사원에 이어 유럽에서 3번째로 큰 교회이다. 가톨릭 자문회는 무어인들이 지은 알모아데 이슬람 사원을 부수게 하고, 1401년 그 폐허 위에 당시 스페인의 어떤 성당보다도 규모가 큰 성
[본문] 라리네아(La Linea)에서 돌산으로만 보고지났던 지브랄터(Gibraltar)를 다시 찾아보다 라니네아(La Linea)에서 돌산으로만 보고지났던 지브랄터(Gibraltar)를 다시 찾아보다. 라 리네아까지 갔다가 시간이 없어서 그냥 돌아왔었던 지브랄터를 제대로 다시 가보았다. 지중해의 패권을 장악하기위한 역사의 현장을 느낄수 있었다.
[본문] 추억을찾아서 추억을 찾아서
[본문] 레알마드리드와 유벤투스의 라몬 산체스 피스후안에서의 준결승전 레알마드리드와 유벤투스의 라몬 산체스 피스후안에서의 준결승전
[본문] 스페인남부 안달루시아해안을 따라서 말라가에서 소토그란데까지의 태양의해안(Costa del Sol), 지브랄터의 입구 라 리네아, 타리파 스페인남부 안달루시아해안을 따라서 말라가(Malaga), 마베야(Mabella),에스테포나(Estepona), 소토그란데(Sotogrande)까지의 태양의 해안(Costa del Sol), 지브랄터의 입구 라 리네아(La Linea),타리파(Tarifa)
[본문] 세비야 FC 전용구장 라몬 산체스 피스후안(Ramon Sanchez Pizjuan) 스타디움의 모습과 터키 베식타스, 포르투칼 FC포르투의 경기 세비야 FC 전용구장 라몬 산체스 피스후안(Ramon Sanchez Pizjuan) 스타디움의 모습과 터키 베식타스, 포르투칼 FC포르투의 경기모습
[본문] 마드리드에서 다시 세비야로, 47도의 날씨에 찾은 고대 역사/생활 박물관과 스페인광장 마드리드에서 다시 세비야로, 47도의 날씨에 찾은 고대 역사/생활 박물관과 스페인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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