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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T 저널9 우리가 가진 하나님의 말씀은 하나님께서 오늘의 나를 위해 특별히 준비해 두신“족집게 예언”이 아니다. 에 대한 답변을 도출해 내게 하는, 굳이 말하자면 간 접적 대화의 방식이다. 따라서 우리가 듣고자 하는 하나님의 음성은 읽고 무조건 따르기만 하면 되는 단답형 답안지가 아니다. 하나님의 수능시험은 답 자체를 외우기보단 답이 도출되는 원리를 알기 원하고, 기계적인 공식 암기보다는 문제해결 능력을 우선시한다. 내 이웃이 누구냐고 물을 때 이야기를 들려주시는 예수님처럼, 당신의 뜻을 구하는 우리들에게 하나님은 얼핏 우리와 상관없어 보이는 여러 이야기들을 건네주신다. 단순한 삶을 위한 단순한 답변이 필요한 다섯 살 꼬마에게는 당혹함이겠지만, 삶의 새로운 상황은 언제나 “창조적 판단”을 요구하고, 그래서 우리에겐 상황을 대처할 “감각”이 필요하다는 것을 아는 스물다섯 청년에게는 오히려 불가피한 대화법일 것이다. 우리는 성경 말씀에 기초해 우리 삶 속에서 하나님의 뜻을 찾아 가지만, 이는 무조건 외워서 우리 삶의 답안지 위로 옮기기만 하면 되는 것이 아니다. 언제난 어린 아이로 머물 수 없는 우리는 어른에 어울리는 영적 생활력과 영적 생활의 지혜가 필요하다. 엄마에게 묻지 않아도 스스로 사리를 판단하고 삶을 살아갈 수 있는 성숙한 영적, 도덕적 판단력 혹은 감각을 길러야 한다는 이야기다(히 5:14). 그런 점에서 성경은, 끊임없는 적용과 실천을 통해 영적 감각을 익히게 하고, 그럼으로써 스스로 선과 악을 분별하며 하나님의 뜻을 실천해 갈 수 있도록 돕는, 말하자면 일 종의 훈련 지침서다. 우리의 큐티가 내 삶의 모든 결정을 엄마에게 떠맡기는 다섯 살 짜리의 물음과 같을 필요는 없다. 오히려 나와 말씀과의 만남은 아침 식탁에서 대학생 아들이 연륜 깊은 부모와 삶의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 과 비슷하다. 마마보이가 아닌 정상적 가정이라면, 부모님의 말씀은 그 날 내가 할 일들에 대한 구체적인 지침을 주지는 않는다. 부모님의 젊은 시절 이야기거나, 나를 기르며 있었던 일들에 관한 이야기거나, 혹은 아예 다른 누군가에 관한 잡담일 수도 있을 것이다. 물론 이런 이야기들은 당장 나의 하루와는 무관한 것들이다. 하지만 이런 “남의” 이야기들은 언제나 내 삶을 새롭게 생각하게 만들고, 나의 판단력을 더 깊게 하고, 그래서 내 삶이 더 성숙해지도록 돕는 지혜의 말씀들이다. 내가 할 일을 구체적으로 지시해 주는 그런 말씀이 아니라, 내 생각과 행동을 더 깊게 하고, 그래서 내 삶이 더 성숙하도록 만드는 그런 말씀들이라는 것이다. 나와 무관한 듯 보이는 성경의 말씀들 역시 그런 점에서 우리의 성숙을 위한 하나님의 선별된 가르침들이다. 구약이든 신약이든 모두 내 하루를 위한 지침은 아니다. 태초 인류의 이야기든, 이스라엘의 이야기든, 나사렛 예수의 이야기든, 바울과 고린도교회의 이야기든 모두 내 이야기는 아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내게 들려주시는 이런 “남의 이야기들”은 그 하나하나가 성숙한 내 삶을 위한 지혜의 말씀들이 된다. 하나님의 창조 이야기 속에서,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택하고 미래를 약속하는 이야기를 통해서, 혹은 그 약속에 응답하지 못하고 죄악으로 고통하는 이스라엘의 좌절 속에서, 그 좌절 속에서 피어나는 새 시대의 소망 속에서, 말씀이 육신이 되어 이 땅에 오시고, 인류의 죄를 위해 고통당하고 부활하신 이야기 속에서, 또 초대교회가 그 복음의 말씀을 붙잡고 하늘을 향한 길을 걸어가는 복잡다단한 이야기 속에서, 우리는 내 삶을 지탱하고 인도하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다. 오늘 내 하루를 위한 지침은 없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