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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nter><font style="background-color:#ffffff;font-size:14px"> 광해군은 선조와 공빈 김씨 사이의 둘째 아들로 세자로 책봉되었다. 말년에 선조의 계비 인목왕후가 영창대군을 낳음으로써 권력의 암투가 벌어졌다. 선조는 적자인 영창대군에게 왕위를 물려주고 싶었으나 승하하기 직전 영창대군은 겨우 두 살밖에 안 되어 할 수 없이 광해군에게 왕위를 물려주었다. 1608년 왕에 즉위한 광해군은 임진왜란으로 피폐해진 국토와 문화재 복구사업에 전념했다. 창덕궁 등 궁궐을 중수하고, 대동법을 실시했으며, 특히 당시의 국제정세를 적극적으로 이용한 북방외교정책은 광해군 최고의 치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