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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일독립전쟁 명장 열전┃83 ▶ 왕청문 소황구에서 순국하다 1934년 8월 12일(음) 양세봉 장군은 부관 김광욱, 김성 해 등과 왕명번을 따라 나섰다. 일 행이 대랍자구로 가던 도중 소황구 의 골짜기 좌우 옥수수밭에서 일본 군 밀정 박창해의 저격을 받고 순 국하였다. ▶ 서간도 최후의 독립군 총사령관 양세봉 장군 총사령에 임명된 양세봉 장군은 일제와의 결전을 수행하기 위하여 군의 조직을 5개사로 개편하여 제1 사령에 박대호, 제2사령에 한검추, 제3사령에 조화선, 제4사령에 최윤 구, 제5사령에 정광배를 임명하였 다. 그리고 총사령 본부를 홍경현 왕 청문에 설치하였다. 정의부에서 세운 화흥중학을 속성사관학교로 개편하여 조선 혁명군 관할하에 귀속시키는 동시에 통화현 강전자로 옮겼다. 속성사관학교의 교장에 양하산, 총대장에 윤일파, 교관에 한국 신 등을 임명하고 양세봉은 명예교장으로 독립군을 양성하여 항일역량을 높이는데 진력하였다. 혁명군 양성과 일제와의 전투에 전념하는 양세봉 장군을 일 제의 밀정 박창해가 중국인 왕명번을 매수하여 환인현에 머물 고 있던 장군을 찾아가 무기제공과 연합을 제안했다. 조선혁명군 본부 유적지 (신빈현 왕청문진 전경) 조선혁명군 전투 유적지 (요녕성 신빈현 버스터미널) 영릉가 전투 유적지 (요녕성 신빈현 영릉가진) 조선혁명군속성 사관학교 유적지 (길림성 통화션 강전자진) 양세봉 장군 순국 유적지 (신빈현 왕청문 소황구촌) 양세봉 장군 묘 (서울 국립현충원) 일본군 점령 만주에서 조선혁명군을 이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