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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2┃만주벌의 별이 되어 조선혁명군 영릉가 전투 유적지 (요녕성 신빈현 영릉가진 연통산) 영릉가 전투 유적지 (요녕성 신빈현 영릉가 각이찰성) 흥경사변 유적지 (신빈현 하북 서세명의 집) 영릉가 전튜 유적지 신빈현 서쪽 20km 위치한 곳으로 일본군과 치열한 공방전이 벌어졌던 유적지이다. 조선혁명군의 조직은 군사위원장 겸 사령관은 이웅, 제1중대장 양세봉, 제2중대장 윤환, 제3중 대장 이태형, 제4중대장 김창헌, 제5중대장 장철 호, 제6중대장 안홍, 제7중대장 차용목, 제8중대 장 김보국, 중앙호위대장 문시영 등이 활동하였 으며 서간도 흥경현, 통화현, 관전현, 집안현 일 대에 한인사회 보호 및 안정에 기여하였다. ▶ 영릉가 전투 1932년 4월 양세봉 총사령관이 이끄는 조선혁 명군은 소자하를 건너 흥경(현재 신빈현) 영릉 가에 잠입하였다. 한중연합군과 약속한 밤 12시, 조선혁명군은 영릉가를 정면에서 기습 공격할 태세를 갖추고 신호총 3발을 발사함과 동시에 시내로 진격해 들어갔고, 합동작전을 펴기로 했던 요령민중자 위군의 이춘윤이 이끄는 연합부대는 영릉가의 북쪽으로부터 시내를 공격하여 몇 시간의 격전 끝에 만주국군 80여명을 사살하고 영릉가를 점 령하였다. 일본군과 만주군은 흥경현으로 패퇴하여 수 차례 영릉가를 공격하였으나 한중연합군은 방 어에 성공하였을 뿐만 아니라 무순시 상협하까 지 점령하였으며, 남만주 일대에서 일반군을 격 파하고 이룩한 승전보였다. ▶ 흥경사변 1931년 12월 19일 조선혁명군과 조선혁명당 간 부 30여명이 신빈현 하북 서세명의 집에서 회의 를 열 때 친일밀정을 통해 정보를 입수한 일본 통 화영사관 경찰이 회의현장에 급습하여 10여 명 의 간부를 체포했다. 이른바 흥경사변이다. 중앙 집행위원장 이호원을 비롯, 김관웅·이종건·장 세용·이규성·박치화·전운학·차용륙·김보 안·이동산 등 중요간부 다수였다. 양세봉과 고이허, 양기하 등은 극적으로 탈출 하여 국민부와 조선혁명군의 조직을 정비했다. 조선혁명군의 항일독립전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