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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학사 사장 이상룡 이상룡 선생 생가 (경북 안동 임청각) 경학사 창설 주역 이회영 이회영 선생 생가터 (서울 명동 YWCA앞) 서울지역에서는 이회영 6형제 이동휘, 이동녕 등이 가산을 매각하여 독립투쟁 자금을 마련한 후 1910년 12월 30일 압록강을 건너 망명을 결행 했다. 특히 이석영 형제는 조선말 귀족의 명예와 부귀영화도 버리고 가택과 토지를 매각한 곳은 명동YWCA 건물과 명동성당 일부가 포함된 지역 으로 독립자금으로 마련한 금액은 거금이었다. 또 1911년 1월 초순, 경상도 안동 일대의 혁신 유림과 지사 백하 김대락, 동산 유인식, 석주 이 상룡, 일송 김동삼 등과 그 가족들이 문전옥답과 모든 가산을 처분하여 압록강을 건너 서간도 유 하현 삼원포로 집단 망명했다. 망명에 앞서 모든 노비를 해방하고 조상위패를 땅에 묻고 떠난 이 상룡의 예에서 나타나듯 영남의 혁신유림들이 앞장서서 한국판 노블리스 오블리제를 몸소 실 천했다. 경학사, 신흥강습소 유적지 만주 망명 항일지사들의 삶은 고초와 시련의 연속이었다. 여름철의 가뭄, 풍토병, 홍수 등으로 수 많은 사 람들이 생명을 잃고 만주 현지인들의 차별과 냉대, 영하 30도를 오르내리는 혹한으로 인한 현지적응에 어려움이 많았다. 경학사, 신흥강습소 유적지 경찰과 일본의 감시를 피해 대고산 산중에서 경학사 창설대회를 열고 만주로 망명한 한인들은 자치단체의 결성을 선포하였다. (길림성 유하현 삼원포 대고산) 조선의 선비, 노블리스 오블리제를 실천하다 14┃만주벌의 별이 되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