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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2┃독립전쟁 50년의 거룩한 울림 ▶ 김좌진 홍범도 연합부대의 승리 김좌진 제 2연대는 아즈마 대공세를 어렵게 막 아내고 있을 무렵, 우측 산마루에서 요란한 총소 리가 나면서 일본군들이 쓰러지기 시작하였다. 완루구 전투를 마치고 안도현으로 이동하던 홍범 도 장군은 어랑촌에서 북로군정서가 일본군의 공 격을 받고 있다는 급보를 받고 곧바로 부대를 돌 려 이곳으로 달려온 것이다. 어랑촌 전투는 어랑촌 일대에서 10월 22일 하 루 종일 계속되었다. 북로군정서군 약 600명과 홍범도 연합부대 800명이 아즈마 지대의 기병연 대와 보병연대가 연합한 1,500명 내외의 병력과 치열한 접전을 전개하였다. 전투는 하루 종일 계속되었으며 독립군들은 보급이 부족한 상황에서 굶주리며 격전을 감당해야 했 다. 하지만 위험을 무릅쓰고 독립군을 후원하는 동포들의 도움에 힘입어 어랑촌 전투를 승리로 이끌 수 있었다. 날이 어두워지자 야음을 틈타 북로군정서군은 산줄기를 타고 서북쪽으로 퇴각하였으며, 홍범도부 대 도 북로군정서의 일부 부대와 합세하여 안도현 방면으로 철수하기 시작함으로써 치열했던 어랑촌 전 투가 막을 내리게 된 것이었다. 어랑촌 전투는 일본군 연대장 가납(加納) 대좌 이하 6백여 명을 사살 하 였고, 독립군측에서도 전사 1백여 명, 실종 90명, 부상 2백여 명의 고귀한 목숨들이 희생되었다. 청산리 전투의 영웅으로 광복 후 초대국무총리를 역임한 이범석의 우둥불에서는 어랑촌 전투를 이 렇 게 회고하고 있다. “적의 기관총과 모든 무기가 우리를 향해 불을 뿜기 시작하였다 점점 더 세차게 압력이 가하여졌 다. 적군은 골짜기로 밀물처럼 밀려들어오고, 총알과 포탄은 비바람 불 듯 쏟아졌다. 날카로운 적의 외침은 사람의 마음과 넋을 갈기갈기 찢는 듯했다. 그러나 우리는 교묘한 위장과 엄 폐 물을 이용하여 높은 곳에서 여전히 보총, 기관총, 박격포로 철십자 화망(火網)을 교차시키며 무수한 탄 환을 적에게 퍼부었다.” 어랑촌 전투 최대 격전지 874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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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독립군의 한중연합 전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