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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산리 일대 6일간의 독립전쟁┃81 ▶ 어랑촌 전투 청산리독립전쟁에서 독립군 연합부대가 거둔 승리 가운데 규모가 가장 큰 전투였다. 10월 22일 아침부터 해가 질 때까 지 이도구 어랑촌 서남방 874고지 남측에서 김좌진 부대와 홍범도 연합부대가 일본군과 대격전을 벌인 전투이다. 어랑촌은 경술국치 이후 함경북도 경성군 어랑사의 주민 10여 호가 이주하여 개척한 마을로 이도구촌에서 서쪽으로 십리 가량 떨어져 있었다. 아즈마의 총지휘부가 있는 어랑촌은 천수평에서 동쪽으로 20여리밖에 되지 않았다. 천수평에서 도망 친 패잔병들에게 급보를 들은 아즈마는 기병제 27연대, 포병 제 25연대, 보병 1개 대대까지 출동시켜 공 격해 왔다. 김좌진의 북로군정서군은 천수평 전투 이후 곧바로 어랑촌 서남단의 고지를 일본군보다 먼저 점령하기 위해 진격하였다. 천수평 전투에서 노획한 일본군 문서에서 일본군의 주력이 어랑촌에 있다 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이었다. 김좌진의 부대는 부근의 874미터의 고지를 선점하고 일본군과 전투를 준 비 하였다. 얼마 후 일본군과 북로군정서군 사이에 교전이 시작되었다. 지형적으로 유리한 위치에 있던 북 로군정서군은 일본군을 효과적으로 공격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일본군도 가노오(加納) 대좌가 직접 지 휘 를 맡아 오전 9시를 기해 독립군을 공격하기 시작하였으며, 병력을 추가로 투입한 일본군은 시간이 지 날 수록 공세를 강화하였다. 일본군의 포탄이 고지 중앙에 떨어져 전투를 지휘하던 김좌진의 군모(軍帽)가 파편에 맞아 날아갔으 며 이범석이 적진을 향해 내뻗은 군도(軍刀)가 총탄에 맞아 두 동강이 나는 등 치열하게 전개되었다. 이날 오후부터 김좌진부대와 홍범도연합부대의 일본군에 대한 연합작전이 시작되었다. 홍범도 연합 부 대는 북로군정서가 있는 바로 옆 고지에 진을 치고 일본군의 배후에서 기습적인 공격을 시작하였다. 이 후 일본군과 독립군은 숫자상으로 대등한 전력하에서 전투를 수행했다. 독립군은 압도적으로 유리한 지 형을 활용하여 일본군에게 심각한 타격을 가할 수 있게 되었다. 물론 전투 초기부터 격전을 치러야 했 던 북로군정서군은 일본군의 우세한 화력에 의해 피해를 입었지만, 새롭게 전력을 보강한 독립군은 일본 군 에게 커다란 타격을 가할 수 있었다. 어랑촌 전투 유적지 청산리 전투 최대 격전지 어랑촌 전경 청산리 전투 어랑촌에서 와룡촌까지 전개되다. 청산리 전투 최대격전지 어랑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