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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산리 일대 6일간의 독립전쟁┃77 북로군정서 부대는 왕청현 서대파를 떠난 지 한 달이 된 10월 18일에 삼도구(현재 화룡시내) 송월평에 도착하여 나월평(현재 화룡시 부흥향 송월촌)까지 부대를 주둔시키고 있었다. 북로군정서 부대는 충신 장 (현재 화룡시 시내) 아래에 주둔하면서 뒤따르는 일제침략군을 일망타진하려다가 일반 백성들이 피해 를 입어서는 안 된다고 판단하여 평양촌(지금의 청산리) 방향으로 돌리었다. 그들은 화룡현의 대진창에서 점심을 먹고 수십 리 서쪽골짜기에 들어섰는데, 삼도구 일대에 살고 있 던 한인들이 북로군정서 독립군에게 짚신, 의복, 마차 등을 전하고, 식량을 거두어 부대 주둔지로 운반하 여 전달하였다. 송월평의 사람들은 오랜 시간 대장정에 지친 북로군정서 독립군을 위하여 음식을 마련하고 소를 한 마 리 잡았다. 그런데 두만강을 건너 북간도를 침략한 일본군이 계속 뒤따라오자 김좌진은 송월평 민중 들 이 피해를 입게 해서는 안 된다면서 부대를 이끌고 해란강을 거슬러 계곡을 따라 올라가게 하였다. 송 월 평을 떠난 북로군정서는 평양촌 마을에 잠시 머물다가 백운평 마을을 지났다. 백운평은 지나가는 구름 이 머무르는 평탄지란 뜻으로 화룡시내에서 25km 거리에 있다. 송하평 마을이 있는 곳을 제외하고는 수 십 리에 길게 뻗어있는 좁은 골짜기가 이어지고 있었다. 이 골짜기에 있는 송월평, 라월평, 십리평, 평양 평, 백운평 등의 마을에는 평안도와 함경도에서 이주한 한인들이 살고 있었다. 백운평은 해발 1,676m의 베개산에서 약 2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있는 마을로 좁은 골짜기 양쪽으로 장백산맥에서 이어져 온 남강산맥 줄 기가 뻗어 내리는데 1,500미터가 넘는 고봉들이 마치 병풍처럼 이어지고 있다. 북간도 한인들의 헌신적인 지원과 청산리 승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