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1page

58┃독립전쟁 50년의 거룩한 울림 대한민국 국군의 뿌리가 국방경비대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 다. 미군정 당국이 급조하듯 만들어진 군대가 어떻게 대한민국 국군의 뿌리가 될 수 있으며, 일본군 출신이나 일제 경찰 출신들, 한때 국가와 민족을 배반하고 자신의 영달만을 추구했던 사람들 이 모인 군대가 과연 대한민국 신성한 군인의 뿌리라고 말할 수 있겠는가. 우리나라 헌법전문에 분명히 밝히고 있듯,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을 이어받고 있는 대한민국은 당 연히 의병, 독립군, 광복군으로 이어지는 정통성을 계승해야 한다. 그러므로 친일군인이나 일경 출신이 군대 발전에 남긴 업적이 일부 있다 하더라도 그것에 얽매이지 말고, 그 동안의 흠과 티를 과감하게 걷어 내는 길은 신흥무관학교의 정신, 자주독립 정신, 민족의식 고취와 인재 양성, 강병육성 등을 오늘에 살려 대한민국 국군의 뿌리와 정신으로 삼아야만 이 나라 미래를 책임질 젊은이들이 ‘떳떳하고 자랑스러운 군 인의 길’을 걸어갈 수 있을 것이다. 신흥무관학교의 명성이 높아지자 중국 군벌들이나 일본군이 견제하기 시작했다. 일제는 1920년 5월부터 중 · 일 합동수색대 를 결성하여 삼원포, 고산자, 합니하에서 애국지사와 가족들을 체포하거나 살해했다. 또 1920년 6월 봉오동 전투에서 대패한 일 본군도 이를 복수하고자 양민학살과 독립군 초토화 작전으로 경 신참변을 일으켰다. 그러한 상황에 따라서 1920년 6월, 서로군정 서와 신흥무관학교 관계자들은 산록으로 피신하고, 지청천, 김동 삼이 이끄는 400여 명의 교성대는 백두산 내두산촌으로 이동하 여 청산리 전쟁에 참전하게 된다. 그리고 1921년 5월, 본부를 길 림성 액목현으로 옮겼으며, 신흥무관학교 졸업생들도 독판 이상 룡과 부독판 여준을 중심으로 항일투쟁을 다시 전개하는 한편, 액목현 대황지에 신흥무관학교를 계승한 검성중학원(劍成中學 院)을 설립했다. 또한 의열단 창설, 배달학교 설립, 국내진공작 전 등에 참여했다. 신흥무관학교 본교 유적지 길림성 유하현 고산자 대두자촌 심산유곡 황무지를 옥토로 만들었던 신흥무관학교 합니하 유적지 가을 광활한 신흥무관학교 본교 터 대두자촌 중국인 벼농사는 풍년을 노래하다. 대한민국 국군, 신흥무관학교 정신 이어가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