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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일독립전쟁 선언과 준비과정┃45 ▶ 신민회의 독립전쟁 결의와 활동 1910년 8월 29일, 일제에 의해 한일강제병합이 선언된 후, 신민회는 운동방향을 새롭게 모색하려 는 회의를 열었다. 양기탁, 이동녕, 안태국, 김구 등 나라 안에 있던 신민회원은 서울의 양기탁 집 에 모이고, 나라 밖의 망명자 안창호, 신채호, 이 갑 등은 중국 산둥성에서 회의를 거듭한 결과, 앞 으로의 투쟁방향을 독립전쟁으로 결의하였다. 첫째 ‘독립전쟁 전략’을 최고전략으로 채택 둘째 국외에 ‘독립운동기지’와 ‘무관학교’를 설립 셋째 신민회 간부들은 국외로 망명하여 적극적 으로 활동 넷째 국내 회원들은 만주이주와 무관학교 사업을 지원하고, 국내의 계몽운동도 계속하기로 결의 신민회는 독립전쟁에 대비하는 만주 이주계획과 무관양성을 위해 청년들을 모아 만주로 이주시키고, 그 들을 지원할 자금조달책임을 지역별로 분담하여 비밀리에 활동을 전개했다. ▶ 독립전쟁의 승리와 새로운 나라 건설 신민회의 독립전쟁 준비 과정은 먼저 독립전쟁에 대비하여 강성 한 독립군을 양성하고, 일본제국주의 군대와의 전쟁수행 능력을 하 루 빨리 갖추려는 것이었다. 또한 국권회복의 기본방략으로 국내에서는 계몽교육을 통하여 항일의식을 가진 청년(상동청년회, 대동청년단)을 육성하고, 국외 에서는 서간도 삼원포에 독립군 기지를 건설하여 독립군을 양성하 는 일이었다. 다음에 일제가 대외적으로 침략전쟁을 벌이는 시기 에 국내외에서 민족의 역량을 총집결하여 일제와의 무장투쟁을 통 하여 독립을 쟁취한다. 가장 중요한 목적은 조선왕정이 아닌 신민 (新民)이 주체가 된, 새로운 나라(민주공화제에 의한 국가)를 건설 하려는 계획이었다. 이상룡, 김대락, 이회영, 이동녕, 김동삼 등 신민회원과 만주 망명지 사들이 독립군 양성 무관학교 설립을 준비하던 요녕성 환인현 횡도 천 전경. 주몽이 고구려를 건국했던 졸본성이 바라보이는 곳이다. 독립운동가들이 모여 무관학교 설립을 준비하던 환인현 횡도천 전경 만주에 최초로 세워진 신흥강습소 유적지(길림성 유하현 삼원포 추가가촌 전경) 신민회 활동중심지 남대문로 1910년대 현재 상동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