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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독립전쟁 50년의 거룩한 울림 ▶ 항일무장독립전쟁론의 대두와 무관학교 설립 독립전쟁론의 출발점은 1905년 을사늑약 체결 이후 더욱 강렬해진 의병전쟁에서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다. 일제는 의병토벌작전을 전개하여 우리민족의 국권수호무장투쟁을 봉쇄하고, 1907년 대한제 국 군대를 해산한 뒤 전국에서 무장봉기한 정미의병을 무자비하게 진압하고, 1910년 8월 29일 대한제 국 을 식민지화하였다. 국내의 항일의병부대는 1910년대 중반 무렵까지 치열한 전투를 전개하였고, 그 후 국내작전이 불가 능 하다고 판단하여 만주와 연해주 등지로 이동하였는데, 이들은 일제에 의해 강제 해산을 당한 대한제국 군 출신들이 많았다. 그들은 근대적인 군사교육을 받았고, 신식무기를 소지한 민족군대의 성격을 띠고 있 었 으며, 강렬한 항일의식의 소유자들이었다. 이들이 국내에서의 의병전쟁에 한계를 느끼고 중국만주, 러 시 아 연해주지역으로 이동함에 따라 종래의 의병전쟁은 독립전쟁으로 전환되었다. 한편 애국계몽운동계열 가운데 신민회 소속 독립운동가들은 국외 독립군기지건설 및 무관학교 설립 계 획에 따라 서간도지역으로 망명이주하였다. 그리고 재만한인사회를 형성하고, 지속적인 항일투쟁을 위 한 독립전쟁기지를 건설하였다. 서간도 유하현 삼원보에 설립되었던 경학사와 신흥강습소(新興講習所 ), 북간도 왕청현 나자구에 설립된 동림무관학교, 흑룡강성 밀산의 한흥동 등이 그 대표적 사례이다. ▶ 대일무장독립전쟁의 길 독립전쟁론은 항일지사와 청년들이 만주와 연해주 로 건너가 독립군에 가담하게 만든 원동력이 되었고, 의병전쟁에 참전했던 수많은 의병들이 만주로 이동 해 적극적으로 참여하게 되었다. 또한 만주에 신흥무관학교를 세워 독립군을 양성 하고, 대한독립단, 광복군사령부, 북로군정서와 서로 군정서, 대한통의부, 참의부, 정의부, 신민부 3부 시 대를 거쳐, 조선혁명군, 한국독립군, 나아가 조선의 용대, 광복군으로 이어지는 대일독립전쟁 35년 역사 의 근간이 되었다. 북간도 독립운동의 중심지 용정시 전경 독립군 국내진공작전 유적지 두만강 일대항일독립지사들이 건넜던 신의주와 단동의 압록강 1920년 대한통의부 결성지 환인현 마권자 서로군정서 본부(길림성 유하현 삼원포)북로군정서 본부(길림성 왕청 서대파촌) 독립지사들의 대일독립전쟁 준비과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