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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 의병전쟁의 위대한 전투┃29 ▶ 제2차 서울진공작전을 다시 준비하다. 13도창의대진소의 서울진공작전이 실패로 끝 난 후 이강년, 연기우, 김수민, 문태수, 신돌석 등 의 의병장들은 의진을 이끌고 종전의 연고지로 돌아가서 의병투쟁을 계속하였다. 이은찬은 관동창의원수부 의진을 재편하고 의 병장에 올라 연천, 포천, 양주 지역과 임진강 유역 에서 김수민, 김준식, 맹군집, 심노술, 연기우, 윤 인순, 정용대, 지홍윤 등이 이끄는 10여 개의 의 진 2,500여 명의 의병과 다양한 형태로 연합, 분 산하여 의병투쟁을 펼쳤다. 특히 황해도 평산, 해주 등지에서 맹활약하던 이진룡, 한정만 등의 평산의진과 호응하면서 일 본군과 격렬한 전투를 벌여 양주, 포천, 연천, 삭녕, 금천, 백천, 연안을 연결하는 지역과 서해 도서지방까 지 일본 군경을 기습하여 큰 타격을 주었다. ▶ 의병해방구, 임진강 감악산 일대 허위는 임진강 유역의 감악산 일대에서 의병부대를 재편성하여 지휘하면서 군율을 엄격히 정하고, 군 표(軍票)를 발행하여 백성들의 피해를 최소화하였다. 그리고 제2차 서울진공작전을 위해 감악산 일대 훈 련장에서 군사를 훈련하고, 무기를 제조하게 하였으며, 군량미를 비축하며 제2의 서울진공작전을 준비하 였다. 1908년 4월 21일 13도 의병연합부대의 재의거 격문을 전국에 띄웠다. 이에 호응하여 13도 의병연합부 대가 제2차 서울탈환을 위한 공격전과 소규모 전투를 시작하였다. 연합의병대는 서소문, 불광리, 뚝섬 , 동작나루까지 진출해서 치열한 유격전과 기습전을 감행하였다. 1908년 5월에는 고종황제의 복위, 외교권 회수, 통감부 폐지 등의 32개조에 달하는 민족적 요구를 일 제 통감에게 통고하였고, 서울과 경기를 넘나들며 유격전을 전개했다. 조선주차군과 일본군은 1개 사단 병력으로 방어하다가 다급해지자 본국에 긴급지원을 요청했다. 1 908 년 5월 8일자로 일본군 제6사단 제23연대와 제7사단 제27연대의 2개 연대가 긴급 증파되어 의병부대 의 제2차 서울탈환공격에 대한 방어에 투입되었다. 김수민 의병장 고랑포 전투지(좌) 왕산 허위 의병장 피체지(경기 포천 유동리) 이은찬 의병장 기념비(원주시), 왕산 허위 의병장 기념비 (구미시) 임진강 창의원수부 주둔지 및 전투지 고랑포구 일대 제2차 서울진공작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