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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병봉기와 국권수호전쟁┃17 ▶ 홍주 의병, 일본군과 대격전을 벌이다. 호서지방의 요충인 홍주를 의병이 점령하자, 일본군은 탈환 하고자 반격을 시도하여 이튿날인 5월 20일부터 다섯 차례에 걸쳐 헌병과 경찰 병력을 동원, 홍주성을 공격하였으나 의병 의 저항에 막혀 성공을 거두지 못했다. 조선 조정은 공주와 청주 진위대의 병력을 출동시켜 일본 헌병 및 경찰과 합세하도록 하였으나, 의병은 견고한 성벽에 의지하여 집중사격으로 공격을 막아냈다. 관군과 합세한 공 격에도 계속 실패하고 일본군의 피해가 증가하게 되자, 일본군은 대규모의 병력을 파견하여 홍주성을 공 격하기로 결정하였다. 조선통감 이등박문의 명령을 받은 조선주차군 사령관은 서울에 주둔중인 보병 제 60연대의 제1대대장 다나카를 지대장으로 하는 2개 중대의 지대를 편성하여 27일 홍주로 급파하였다. 5 월 29일 홍주성 동쪽 천변리에 도착한 일본군은 홍주성 서쪽 도로를 봉쇄하여 퇴로를 차단하고, 북문과 동문으로 공격하여 성 안의 의병을 포위, 섬멸하려는 계획을 세웠다. 일본군은 이러한 계획 아래 성의 남 문과 서문에 기관총 사격을 수십 차례 실시하여 의병의 주력을 성벽의 남서쪽으로 집중시킨 다음, 5월 31 일 새벽에 총공격을 시작하였다. 우세한 화력을 앞세워 동문과 북문으로 일본군이 밀려들자, 의병들 은 대로를 차단하고 시가전을 전개하였다. 그러나 사상자가 급증하여 더 이상 항전을 계속 하지 못하고 날 이 새기 전에 성을 탈출할 수밖에 없었다. ▶ 홍주의병, 장사공 묘역에 잠들다. 홍주성 전투로 일본군은 10여명이 사살된 반면, 의병은 82명의 전사자를 내고 145명이 포로가 되는 커다란 손 실을 입었다. 홍주성 전투에서 전사한 의병들의 유해는 고을사람들이 모아 홍성천변에 매장되어 있었는데, 1946 년에 그 일대에서 의병유골을 다시 수 습하여 홍주의사총에 봉안하게 되었 다. 매 년 5월 30일, 홍주의병의 숭고 한 뜻을 기리는 추모제가 열리고 있다. 1896년 병오년 홍주성 전투는 신돌석, 정용기 부대 의 의병활동과 더불어 3대 전투의병의 하나로 손꼽 히고 있다. 홍주성 전투에서 가장 격렬한 전투가 벌어졌던 조양문 홍주 병오의병 기념비 홍주의병, 장사공 묘 홍주성 전투 유적지(홍주성 홍화문, 충청남도 홍성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