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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병봉기와 국권수호전쟁┃11 양평 을미의병 기념비 홍주 을사의병 기념탑 을미의병 1895년 10월 8일 명성황후(明成皇后) 시해사건과 김홍집 친일내각의 단발령에 분격한 유생들이 근왕창의(勤王倡義)를 내걸고 친일내각의 타도와 일본세력의 구축을 목표로 일으킨 항일의병으로 충남 유성의 문 석봉이 처음 의병을 일으켰다. 을미의병들과 의진을 살펴보면 남한산성의진의 김하락, 심상희, 구연 영, 춘천의진의 이소응 형제, 강릉의진의 민용호, 영양의진의 김도현, 안 동의진의 권세연, 김도화, 선성의진의 이만도, 금산의진의 허위, 이은찬, 문경의진의 이강년, 진주의진의 노응규, 그리고 호좌의진의 유인석,이 필희, 이춘영, 안승우 등이 전투의병으로서 활약하였지만, 고종의 어명 으로 해산하다. 을사의병 1904년의 일제침략에 저항하여 의병운동으로 전환된 이래 을사늑약 의 체결은 더욱 의병항쟁을 고양시켰다. 그러나 을사의병이 기의하여 활동을 전개한 것은 다음 해인 1906년 병오년부터였다. 을사의병의 적극적인 국권수호 투쟁은 홍주에서 일어난 민종식, 태인 에서 일어난 최익현 · 임병찬, 남원에서 일어난 양한규, 담양에서 일어 난 고광순, 장성에서 일어난 기우만, 영해에서 일어난 신돌석, 원주에서 일어난 원용팔, 홍천에서 일어난 박장호, 영천에서 일어난 정환직, 정용 기 등이 크게 활약하였다. 정미의병 의병 봉기가 전국적인 규모로 확대된 것은 정미7조약의 체결과 군대 해산이 강행된 이후부터였다. 경기도에서는 허위가 연기우를 부장으로 하는 강화분견대 군인들을 포섭하여 임진강유역의 포천 · 연천 등지에 서 강력한 항전기반을 형성하였다. 그리고 호남지역에서는 기삼연이 장 성에서, 전해산이 나주에서, 김태원이 함평에서, 심남일은 강진에서, 문 태수는 무주에서, 이석용은 임실에서 각각 의병을 일으켰다. 황해도에 서는 박정빈, 이진룡이 주축이 되어 평산에서 봉기하였고, 평민 출신 김 수민 의병진이 경기도 장단에서, 연기우가 연천 일대에서 막강한 세력 을 형성하고 있었다. 평안도의 경우에는 김여석 의병진이 덕천 · 맹산 일대에서 활약하였 으며, 채응언은 함경도 · 평안도 접경지대에서 항일전을 수행하였다. 함경도 의병항일전은 홍범도, 차도선 등이 삼수 · 갑산 등지에서 산포 수와 광산노동자들을 규합하여 강력한 의병진을 편성하였다. 최재형 은 함경도 경원에서 이범윤, 안중근 등과 함께 의병진을 결성하여 활 약하였다. 호남의병창의동맹단 기념비 국권수호와 의병전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