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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포 구 청년회관 | 등록문화재 제43호 목포 구 청년회관은 '목포 청년회' 활동을 위해 집회 시설로 세운 건물이다. 건물은 단순 장방형 구조의 1층 석조 건물이다. 해방 이후에 교회등으로 오랫동안 사용하여 내부와 지붕 구존ㄴ 건립당시의 원 모습이 크게 변형되었지만 석제 벽체는 남아 있다. 목포 청년회는 1919년 3.1운동의 영향으로 전국적으로 민족의식아 높아가고 청년 운동이 활발해 가는 가운데에 1920년 5월 9일에 목포 청년이 중심이 되어 창립하였다. 주요 활동은 강연및 토론회, 잡지간행, 교육 등이었다. 현 건물은 1924년 9월에 공사를 시작하여 같은 해 12월 30일에 완공하였다. 당시 청년회관 건립을 위해 목포의 각계각층 시민이 의연금을 1만여 원 모급하였다. 1927년에는 민족 단일 전선인 신간회 목포 지부 창립식을 이곳에서 재최하는 등 당시 청년회관은 목포 청년과 시민의 큰 자부심이자 목포 항일민족 운동의 산실이었다. 한국 최초의 여류 장편 소설가인 박화성(1903~1988)의 단편소설 '헐어진 청년회관'(1934년)의 무대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