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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상준은 충남 논산(論山) 사람이다. 1919년 3월 독립운동이 전국적으로 일어나자, 군산(群山) 영명학교 학생인 강금옥(姜金玉)으로부터 독립운동을 하자고 권유받은 창영(昌永)학교 교사 엄창섭(嚴昌燮)과 함께 동년 3월 6일 창영학교에서 추병갑(秋炳甲) 등 동지들과 모여 강경(江景)에서 만세운동을 일으키기로 하였다. 3월 9일 이들은 학교에 모여 태극기를 제작하였으며, 이튿날인 3월 10일 오후 3시 옥녀봉(玉女峰)에 집합하여 군중에게 태극기를 나누어주고 만세를 부르며 강경읍내로 시위 행진을 하였다. 그러나 이들은 출동한 일경에 의해 해산되었으며, 그는 시위를 주도한 인사들과 함께 체포되었다. 그는 1919년 공주지방법원에서 유죄판결을 받았으며, 동년 6월 7일 경성복심법원에서 소위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1년형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출옥 후 1930년에는 같이 독립만세 운동을 주도하였던 강세형(姜世馨)을 통하여 임시정부에 군자금을 조달하는 등의 활동을 하였다고 한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1987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출처 : 보훈처 공훈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