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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6 2024년 2월 테마가 있는 독립운동사 ① 순국 Focus   역사의 시선으로 쓰럽다, 오후 2시에 비가 내렸다. 24일 맑음. 연일 기일인데 나그네처럼 밤을 보내니, 불초한 나 의 죄는 갈수록 용서받기 어렵다. 이병삼이 찾아와 반나절 동안 이야기하였다. 25일 맑음. 아침에 이병삼이 사람을 보내어 집의 아이와 유하 현에 가기로 약속하였다. 아침을 먹은 후에 가서 이 형의 일록(日錄=이상룡이 쓴 대동역사[大東歷史])을 보았다. 단군과 기자, 위만의 역대 중요한 역사를 모 아 놓은 것과 부여와 백제의 흥망성쇠, 태조가 나라 를 일으킨 기틀과 근거, 동북 3성 경계의 여탈(與奪) 과 분합(分合)에 대하여 그 큰 줄거리를 대략 언급하 였는데, 모두 근거를 댈 수 있는 내용으로 번삽한 것 은 추려내고 간요한 것을 취하였으니, 그대로 한 부 의 돈사(惇史)가 되었다. 견문이 해박하고 고상하기 로 요즈음에 이런 사람이 몇이나 되겠는가? 마음속 으로 절실히 존경하고 감복하지만, 과문한 나로써는 감히 더불어 의론할 바가 아니다. 26일 흐림. 집의 아이가 이병삼과 함께 다시 유하현으로 떠났 다. 3백리 미끄러운 흙탕길에 발을 쉴 여가도 없으 니, 물로 이루어진 사람 행색으로 어찌 감당할 일이 겠는가? 애잔하고 가련하기 그지없다. 오늘은 외증 손자가 태어나 엿새가 지났다 해서 나를 불러 국을 대접하였다. 내외 지친이 무릎을 맞대고 단란하게 모 여서 그 아이 때문에 웃음꽃을 피우며 근심과 고적함 을 잊을 수 있었다. 외증손의 이름은 일몽(馹蒙=황재 호)이라 하였다. 그것은 저번에 천리마의 꿈을 꾼 적 이 있고, 이곳은 곧 고구려 고주몽(高朱蒙)이 창업한 곳이기 때문이다. 27일 밤새 눈이 내리더니 아침에 갬. 볕이 나다가 사라졌다. 땅의 온도가 오리니 봄기운 이 차차 생기려는가? 밖에는 추위가 따라서 물러가 고 볕이 따뜻해지니 사람이 조금씩 힘이 생긴다. 외 증손자 이름을 바꾸어 기몽(騏蒙)이라 하였다. 이것 은 주몽이 하늘을 조회하던 날 항상 기린마(麒麟馬) 를 탔다고 하기 때문이다. 이날 밤 다시 꿈에 선친을 뵈었다. 말씀이 문자에 미치자 「운한(雲漢)」 여덟 장 (시경. 대아 편명)을 주제로 시를 지어보라 하셨다. 내가 대답하기를 “재주와 능력이 미치지 못합니다” 라고 하자, 다시 명하시기를 “네 말이 그럴 듯도 하 나, 네가 익힌 바대로 글을 지으면 된다”라고 하셨다. 모시고 문안드리던 즈음이 생시와 같으니, 알지 못하 거니와, 우물을 파면 샘을 얻는 것은 어느 곳이든 있 유하현 삼원보의 벼논들. 이 논을 개간한 사람은 이주 동포들이었다 (2005년 박도 촬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