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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독립운동가 열전 • 억척스레 모아 독립자금 댄 “차인재” 79 신문, 대한민보 등 독립사상에 관련한 신문을 국내에 배포하는 등 주도적으 로 독립운동에 참여하다가 1920년 8월 무렵 미국으로 건너갔다. 2018년 8월 13일 저녁 7시, 약속 시 간에 맞춰 필자는 차인재 지사의 외손 녀가 살고 있는 헌팅턴비치의 조용한 단독주택을 찾았다. 이 집은 LA코리아 타운으로부터 승용차로 1시간여 거리 에 있는 고급 주택가로 정원을 갖춘 2 층짜리 집들이 즐비한 곳이었는데, 조 용하고 깔끔한 모습의 동네 분위기가 인상적이었다. 방문 전에 필자는 전화로 국내외에서 활동한 여성독립운동가에 대한 글을 쓰는 사람으로 후손들을 만나 취재 중이라고 용건을 말했는데 “외 할머니 사진은 제가 많이 가지고 있습니다만 외할머 니에 대한 이야기는 많이 해드릴 게 없습니다. 취재 에 도움이 될지 모르겠습니다.”라고 하기에 내심 걱 정하며 찾아간 길이었다. 그러나 막상 만나보니 차인재 지사의 외손녀 윤 패트리셔 씨는 칠순의 나이에도 생각보다 달변가였 다. 외손녀와 나눈 이야기는 독립운동 이야기보다 외할머니가 자신에게 한국말을 배우게 하려고 현지 ‘국어학교(한국인학교)’에 보낸 이야기, LA에서 식료 품 가게를 하던 외할머니가 억척스럽게 부(富)를 일 군 이야기, 당시(1920년) 미국 여자들도 운전하는 여 자가 드물던 시절에 동양인 여자가 운전면허를 따서 손수 운전하던 이야기 등 주로 외할머니와의 추억담 이 대부분이었다. 기껏해야 30분 정도 이야기를 나 누면 족할 것이라는 예상은 빗나가 대담은 2시간을 넘겼다. 이야기를 하다 보니 윤 패트리셔 씨는 독립운 동가 외할머니에 대해 “아는 이야기가 없는 게 아니라 말 할 기회가 없었던 것” 같았다. 그도 그럴 것이 칠순 이 넘은 윤 패트리셔 씨 기억에, 부부독립운동가였 던 조부모 곧 임치호·차인재 지사에 대해 고국에서 관심을 보이고 찾아온 사람은 필자가 처음이었다는 말에서 진한 소외감을 느끼고 있는 듯했다. 거기에 더해 외할머니( 1971년 별세)는 살아생전에 ‘조국 독 립을 위해 자신이 큰일을 했다’는 사실을 손녀에게 말하지 않았다고 했다. 차인재 지사, 구국민단 활동하다 미국 이주 필자는 거기에 곡절이 있었을 것으로 순간 생각했 다. 그 이유의 하나로 짐작되는 사건이 있었는데 그 것은 다름 아닌 독립단체인 ‘구국민단’에서 활약하 다 미국으로 건너간 외할머니가 일본고등경찰로부 터 쫓기는 신세였던 점이다. 그렇기에 미국에 가서 조선총독부경무국 ‘구국민단 검거’, 고등경찰비밀문서(제26548호)에 차인재 지 사 이름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