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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순국선열 • 윤세복(尹世復) 선생 61 茸)과 함께 한학을 수학하였다. 나이 7세 때 인 1886년 봄부터 15년 동안 고향의 응천재 (凝川齋)라는 학당에서 한학을 공부했다. 하지만 그는 전통 학문에만 얽매어 있지 않았다. 당시의 역사적 상황이 전통적 지식 인으로 안주하게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밀양과 대구에서 교사로 일하다 독립운동 비밀결사 대동청년단 가입 13살 연상으로 일찍이 신학문을 공부했던 형 윤세용의 영향이 컸다. 신학문을 수학한 뒤, 1903년부터 6년 동안 고향인 밀양읍의 신창학교와 대구의 협성학교에서 교사로 근 무하며 교육계몽운동에 종사하였다. 특히 1905년 11월 을사늑약(乙巳勒約)으 로 국권이 일제에게 강탈되자 국권회복의 길 을 모색하게 되었다. 1909년 비밀 청년운동 단체인 대동청년단에 가입하였다. 대동청년 단은 영남지역 인사들이 중심이 되어 17세부 터 30세 미만의 청년들로 조직되었고, 8·15 해방 때까지도 그 실체가 발각되지 않은 독 립운동 비밀결사였다. 이 단체는 1907년 4 월 안창호·양기탁·김구 등 서북지역 인사들 을 중심으로 조직된 신민회(新民會)와 연계를 갖고 항일 민족역량을 결집하며 비밀리에 독 립운동을 전개하였다. 여기에는 안희제·서상 일·김동삼·남형우·곽재기 등 80여 명의 동지 들이 참여하고 있었다. 국권을 회복하겠다는 뜻으로 본명을 ‘세복 (世復)’으로 바꿔 하지만 이들의 노력으로도 기울어져 가는 밀양독립운동기념관의 윤세복 전시 부분(왼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