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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6 2024년 2월 순국 PEOPLE  아름다운 사람들 이달의 순국선열 ‘노동하며, 군인이 되는’ 한국노병회 결성 그러나 기대했던 태평양회의에서의 외교 독립운동이 성과 없이 끝나자, 무장 독립투쟁 만이 조국 광복을 이룰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독립운동방략임을 다시 깨닫게 되었다. 그리 하여 1922년 10월 1일 상해에서 김구(金九)· 손정도(孫貞道)·여운형(呂運亨) · 김인전(金仁 全)·조상섭 등과 함께 ‘모두가 노동하며 군인 이 되는’ 노병일치(勞兵一致) 의 독립운동단체로 한국노병 회(韓國勞兵會)의 조직을 추 진하였다. 그 결과 10월 28 일 ‘조국 광복에 공헌하기 위 하여 향후 10년 이내에 1만 명 이상의 노병(勞兵)을 양성 하고 100만원 이상의 전비(戰 費)를 조성함’을 목적으로 하 는 한국노병회가 결성되었다. 이에 따라 한국노병회는 한국 청년들을 선발하여 중국 군사 교육기관에 유학시키는 등 독 립군 양성과 군자금 마련에 주력하여 갔다. 한편, 이 시기 상해의 임시 정부는 국무총리 이동휘(李東 輝)와 노동국 총판 안창호(安 昌浩) 등 주요 국무위원의 사 퇴, 임시대통령 이승만의 부 재 등으로 그 기능을 상실하 여 가고 있었다. 따라서 임시 정부를 명실상부한 국민의 대 표기관이자 독립운동의 최고 통솔기관으로 개편하기 위한 국민대표회 소집 문제가 독립 연강촌의 조선혁명군 참호, 주둔지 터(안상경 제공).  양기하 흉상과 기념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