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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순국선열 • 양기하(梁基瑕) 선생 55 부사로 하는 한국대표단을 구성하여 적극적 인 독립 외교활동을 벌이게 하였다. 이에 임시정부의 독립 외교활동을 지원하 기 위해 1921년 8월 17일 상해에서 홍진(洪 震) 등과 함께 ‘태평양회의 외교후원회’를 조 직하고, 조상섭(趙尙燮) · 신현창(申鉉彰)과 더 불어 재무간사를 맡아 우리 대표단의 외교활 동을 후원하는 선전과 모 금운동을 전개하였다. 특 히 그 해 9월 간사장 홍 진, 서무간사 장붕(張鵬) 등과 함께 ‘한국 독립의 승인’을 요구하는 ‘외교 후원회의 대(對)태평양회 의 선언서’를 발표하면서 “태평양회의에 참여한 열방(列邦)이 동양평화의 근본 문제인 대한 독립을 완전 승인하기까지 적극 적 활동을 계속할 일” 등 의 행동강령을 천명하였다. 아울 러 그 해 10월 외교후원회 명의로 태평양회의 한국대표인 이승만과 서재필에게 서한을 보내, “미국 정 부에 대해 우리 대표를 출석 참가 케 하도록 요구할 것, 열국(列國)에 대해 우리 대한의 완전 독립 승인 을 요구할 것” 등을 제안토록 요청 했다. 그리고 그 해 11월 11일 태 평양회의가 열리자 임시의정원 의 장 홍진 및 신익희(申翼熙) 등 동료 의원 25명 과 함께 “세계의 평화, 동아(東亞)의 행복과 정 의 인도를 위하여 한국 독립 및 자주의 완전 한 해결”을 요구하는 ‘한국독립청원서’를 각 국 대표들에게 발송하여 무장 독립투쟁만이 아니라 외교 독립운동에도 공헌하였다. 양기하와 조선혁명군 독립군이 주둔하던 연강촌의 막사 터(독립기념관 제공) 양기하가 활동한 중국 요녕성 관전현 연강촌 부근의 압록강 지류 혼하(渾河, 안상경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