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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ecial Theme • 신간회 지방지회의 활동과 특징 51 못했다. 이러한 방해에도 불구하고, 강릉지회는 신 간회 강원도지회의 연합을 결성하려고 했다. 영동과 영서 지역의 교통상의 불편함으로 인해 서면으로 위 원회를 개최하였고, 1929년 11월 강릉지회에서 신 간회 강원도연합회 설립대회를 개최하려 하였으나 무산되었다. 이후 1930년 2월에도 강원도연합회 설 립대회 개최 시도를 했으나, 광주학생항일운동이 일 어나고 이에 편승해 일제에 반대하는 목소리를 낸 신간회 간부들이 검거되는 사건이 발생하며 이 역시 개최되지 못하였다. 지방지회 연합기관의 설치는 1928년 2월 제1차 정기대회에 논의되었던 안건이기도 했다. 전주지역 에서도 전라북도연합회 설립대회를 개최하려고 했 다. 1929년 11월 8일 열린 회의에서는 전주지역 1 면 1분회 설치를 논의하였고, 전라북도연합회에서 전주지회가 주최가 되는 방향을 논의했다. 하지만, 이미 1929년 말부터 침체일로로 겪었던 전주지회는 선전 삐라 배포 사건과 관련하여 위원장을 포함한 다수의 회원들이 다수 검거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기대회를 개최하여 도 연합회 조직외에도 노동·농민·청년·여성·형평운 동 등의 안건을 제출하고 회의를 개최하려 했지 만, 이 역시 일제의 방해로 이루어지지 못했다. 1930년 4월 20일 신간회 탄압에 대한 대책을 논 의하기 위해 개최된 회의조차 금지당하고 해산 권고를 받자 이에 회원들이 항의하다가 일부 회 원이 구속되는 사태를 겪었다. 결국, 1930년 9월 경 주요 간부들이 검거되어 서울로 압송되면서 지회 활동에 어려움을 겪게 되었다. 1931년 5월 15일 경성 중앙기독교청년회관에 서 열린 신간회 제2회 전체대회에서는 해소론을 주 장하는 이들이 대부분 대의원으로 임명되었다. 이날 해소안이 제출·가결되었고, 신간회 지회활동도 거의 보이지 않게 되었다(이 글은 이균영, 『신간회 연구』, 역사비평사, 1993의 제4장 지회의 설립과 활동 ; 윤 효정, 「 신간회 지회 연구의 성과와 과제」 , 『역사문제 연구』 18, 2007 및 『신간회 운동 연구』, 고려대학교 박사학위논문, 2017의 제5장 신간회 지회의 성장과 활동을 토대로 작성하였고, 여기에 필자의 강릉 · 전 주지회 연구의 일부 사례를 넣어 보충함). 신간회 창립 1주년을 맞이하여 신간회 강령이 쓰인 액자 앞에서  기념촬영한 신의주지회 간부들(1928.2.15, 성주현 제공) 필자 장경호 강원대학교 사학과에서 학사·석사학위,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학대학원에서 박 사학위를 취득했다. 서울역사편찬원 학예연구사를 역임하고, 현재 강원대학교  강원전통문화연구소 선임연구원을 맡고 있다. 논문으로 「신간회 강릉지회의 조 직과 활동」,『한국민족운동사연구』 111, 2022 ; 「신간회 전주지회의 조직과 활 동」,『전북학연구』 8, 전북연구원 전북학연구센터, 2023 ; 「1920~30년대 양양지 역 청년운동」,『인문과학연구』 76, 강원대학교 인문과학연구소, 2023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