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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 2024년 2월 Special Theme  신간회 창립 97주년 특집 “한국독립운동과 신간회” 심이 되었다. 옹호동맹은 무엇보다도 군중의 배외주의적 분노 를 자제시켜 화교배척 열기를 잠재우고자 했다. 당 시 화교배척은 만주에서 중국인들이 조선인들을 박 해한다는 풍문에 기인했다. 옹호동맹은 이와 같은 소 문이 사실에 위배된다는 점을 알리면서 재만 조선인 박해가 일제의 만주 정책과 관련이 있다는 점을 전달 해 갔다. 사실 중국인들의 재만 조선인 박해는 일제 의 만주 적극 정책에 기인했다. 일제가 재만 조선인 을 명분으로 삼아 만주 진출을 꾀했기 때문이다. 아울러 옹호동맹은 만주 조선인의 중국 국적 취 득을 주장했다. 이는 국적 문제가 재만 조선인 추방 의 원인이었기 때문이다. 중국 관헌은 재만 조선인 들이 중국 국적을 취득한다면 퇴거명령을 취소하겠 다고 했다. 중국 측 입장에서 만주 조선인들이 일제 와 무관하다면 크게 문제될 것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재만 조선인들의 중국 국적 취득은 애로사항 이 있었다. 이는 일제의 법률 운용과 관련이 깊었다. 즉 일제는 개정 국적법(1924)을 통해 일본인들의 탈 적(脫籍)을 허용했다. 그러나 조선인들에게는 여전히 외국 귀화를 금지하는 구한국 법률을 적용했다. 요컨대 만주 조선인들의 중국 국적 취득 캠페인은 조선인에게도 일본인과 동등하게 일본 국적법을 적 용하라는 민족동권 주장의 구체적 내용이었다. 이와 같은 민족동권론은 일제의 ‘내선융화(內鮮融 和) 정책’을 균열시키는 효과를 꾀하는 것이었다. 재 만 조선인 문제에 있어 일제는 재만 조선인들을 일 본의 신민(臣民)으로 취급해 만주에서 이들의 토지 소유권이 보장될 수 있도록 하겠다는 입장이었다. 즉 일제는 재만 조선인의 ‘보호자’임을 선전하면서 조선인들의 삶을 일제의 만주 정책 범위 내에서 통 제하고자 했다. 전국적 이슈였던 재만동포옹호운동 외에 신간회 각 지회에서도 민족동권 운동은 전개되었다. 무엇보 다도 지방 행정 당국의 불법 행위, 재조(在朝)일본인 들의 불법 행위에 관대했던 일제 경찰의 관행 등이 활동의 주요 내용이었다. 즉 법률에 근거한 조선인 들의 법적 권리를 옹호하고 일본인들의 불법 행위를 처벌하라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는 민족 차별이 관행화되어 있는 식민지 현실을 고발함으로써 조선 민중을 제국 일본의 신민 으로 흡수·통합하려는 식민 통치 전략과 대립했다. 즉 신간회 민족동권 운동은 식민지배 이데올로기가 조선 민중에게 전달되는 것을 방해했다는 점에서 체 제 균열적인 반(反)식민주의 운동이었다. 신간회의 쇠퇴와 해소 신간회의 활동력은 1929년에 접어들면서 감퇴하 기 시작했다. 이는 1928년에 있었던 조선공산당 검 거 사건과 조선일보 필화 사건 등 일제의 탄압이 일 차적이었다. 신간회의 간부로 참여한 상당수의 비타 협적 민족주의자들이 조선일보에 재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신간회 운동을 재기시키려는 새로운 인물들 이 등장했고 이들은 복대표(複代表)대회를 통해 신간 회의 진용을 새롭게 하고자 했다. 또한 이에 발맞추 어 신간회 각 지회에서도 성실한 노력을 기울였다. 그러나 집회 금지를 명하는 일제 경찰력 앞에서 무 력했다. 또한 신간회의 민족동권 운동은 다분히 민 중의 의식을 겨냥하는 것이었다. 따라서 연설회·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