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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ecial Theme • 신간회의 ‘민족동권(民族同權)’ 운동 전개와 쇠퇴 43 간회 창립 주체들은 자치운동 그룹과 근원적으로 대 립했다기보다는 자치운동이 현실화될 경우 식민지 민중에게 미칠 부정적인 영향을 경계했다. 식민지 민중의 정치 참여 문제를 제기했던 자치운동은 자칫 잘못하면 민중으로 하여금 식민 지배 체제에 안주하 도록 유도할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신간회가 창립된 1920년대 중반 민 중의 항일성은 취약했다. 신간회 창립 직전에 있었 던 6·10만세운동에 민중의 참여는 크지 않았다. 따 라서 신간회 창립 주체들은 식민지 민중의 정치 참 여를 제기했던 자치운동이 대중의 지지를 받을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서 이를 배척할 경우 대중으로 부터 고립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결국 신간회는 일제와 싸우려 하지 않는 민중의 무기력한 상태를 고려해야 했다. 즉 신간회는 무엇 보다도 식민 지배 체제 내에서 ‘생존과 일상의 안정’ 을 추구하려는 민중의 심성을 끌어안으면서도 이를 경계해야 했다. 흥미롭게도 신간회의 비타협주의는 식민 지배 체제의 경계에 있었다. 즉 신간회는 식민 지배 체제 내에 적응하려는 민중의 욕망을 받아들이 면서도 식민 지배 체제를 부정해야 할 과제를 안고 있었다. 이렇듯 식민 지배 체제의 경계에 있었던 신간회가 제기한 사회적 의제는 ‘민족동권(民族同權)’이었다. 민족동권은 지배민족이든 약소민족이든 동등한 법 적 권리를 가져야 한다는 의미였다. 즉 신간회 운동 은 식민지 민중에게도 일본인들과 같은 법적 권리를 보장해야 한다는 이슈를 제기함으로써 식민지 법률 체계를 인정했다. 그러나 이는 일제의 식민 통치가 지닌 민족 차별성을 드러내는 전술이었다는 점에서 식민 지배 체제를 긴장시키는 것이었다. 재만 조선인에게 일본 국적법을 적용하라! 신간회의 민족동권 운동은 1927년 12월에서 1928년 초엽까지 진행된 ‘재만동포(在滿同胞)옹호운 동’으로 드러났다. 재만동포옹호운동은 신간회의 활 동으로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사실 이 운동은 신간 회의 활동 가운데 신간회 지회의 관심과 참여를 가 장 많이 모아낸 사례였다. 재만동포옹호운동의 시작은 1927년 12월 중국 동 북지방에 거주하고 있던 ‘재만동포’의 추방 소식이 전해지면서부터였다. 그리고 이 이 무렵 전북 지역 을 시작으로 화교(華僑) 배척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어수선한 상황 속에서 신간회는 여러 사회단체들과 함께 재만동포옹호동맹(이하 옹호동맹)을 조직했고, 신간회 각 지회는 옹호동맹의 지방 조직 확대의 중 재만조선인 추방 삽화(『동아일보』, 1928.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