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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ecial Theme • 신간회 창립의 배경 - 1920년대 중반 주요 민족운동의 흐름과 양상 39 성을 역설했다. 새롭게 ‘민족적 중심세력’을 형성하 기 위한 조직 결성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그리고 이 러한 주장은 자치운동 세력을 배제한 새로운 ‘민족 적 중심세력’ 형성 논의로 이어졌고, 이러한 논의 과 정에서 만들어진 것이 바로 신간회(新幹會)였다 정우회 선언과 조선공산당의 제2차 당대회 1926년 6 · 10만세운동 과정에서 발생한 ‘조선공 산당 검거사건’으로 인해 큰 타격을 받은 조선공산 당이 다시 조직적 역량을 회복한 것은 1926년 11월 무렵이었다. 체포된 기존 간부를 대신해 새롭게 책 임비서에 취임한 김철수(金錣 洙)는 조직을 복구하기 위해 다방면으로 노력했다. 이 과정에서 일본에서 활동했던 일월회(一月會), 중국 북경(北京)과 만주(중 국 동북지방)에서 활동했던 ‘혁명사(革命社)’와 ‘만주 공청 그룹’이 새롭게 가담했다. 또 조선공산당과 대 립했던 ‘서울파’ 세력이 대거 합류하면서 국내외의 사회주의 비밀결사를 아우른 ‘통일 조선공산당’이 결성됐다. 1926년 11월 ‘통일 조선공산당’을 결성하면서 조 직적 역량을 회복한 조선공산당은 자신들의 합법단 체였던 정우회(正友會)를 통해서 새로운 운동방침을 제시했다. 그것이 이른바 「정우회 선언」으로 불리는 문서이다. 「정우회 선언」의 주요 내용은 그동안 나 타난 사회주의 운동의 분열과 혼란을 극복하기 위해 사상단체를 모두 대중적인 방식으로 통합하고 ‘경제 투쟁’을 중심으로 전개되었던 기존 운동 방향을 ‘정 치투쟁’으로 전환해야 하며, 민족주의 진영과의 적 극적인 제휴를 추진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었다. 이 러한 정우회 선언의 내용은 ‘정치운동’으로의 운동 방향 전환을 주장했다는 점, 민족주의 세력과의 적 극적인 제휴를 주장했다는 점에서 사회주의 세력 내 부는 물론 민족해방운동 진영 전체에 큰 파장을 일 으켰다. 한편 「정우회 선언」의 발표로 일대 파란을 일으킨 조선공산당은 1926년 12월 제2차 당대회를 개최하 고 앞으로의 활동 방침에 관한 보다 구체적 내용을 결정했다. 이 자리에서 조선공산당은 정우회를 포함 한 모든 사상단체를 해체하고, ‘전국적 단일 표면적 정당’에 가입할 것을 결의했다. 즉 자신들이 직접 조 직을 결성하는 것이 아니라 새롭게 만들어질 단체 결성과정에 개입해 그것을 기반으로 활동하기로 결 의한 것이다. 이러한 조선공산당의 활동 방침은 곧 구체적인 활동으로 나타났다. 1927년 2월 15일 개 최된 신간회 창립대회에 조선공산당이 대거 참가한 것이다. 이러한 조선공산당의 대대적인 참여에 힘입 어 사회주의 세력과 민족주의 세력이 결합한 ‘민족 통일전선’ 조직인 신간회가 탄생했다. 성균관대학교 대학원 사학과에서 『1929년 원산총파업 참여 노동자층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성균관대학교 사학과 4단계 BK21교육연구단 박사후 연구원으로 재직 중이다. 『한국독립운동사 재조명-3·1운동과 1920년대 국내 사회운동』(독립기념관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 2022, 공저) ; 「1920년대 중반  벽신문(壁新聞)의 등장과 의미」, 『역사연구』 46, 2023 ; 「1929년 원산총파업 에 관한 국내외의 반응」, 『韓國史學報』 91, 2023 등의 논저가 있다.  필자 최보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