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page

36 2024년 2월 Special Theme  신간회 창립 97주년 특집 “한국독립운동과 신간회” 지역을 장악한 군벌 세력을 무너뜨리기 위해 중국공 산당과의 연합했는데 이것이 이른바 제1차 ‘국공합 작’이다. 국공합작을 통해 조직 역량을 강화한 중국 국민당은 1926년 7월부터 북부지역의 군벌을 무너 뜨리기 위한 ‘북벌(北伐)’을 전개하면서 북상했다. 물 론 이후 1차 국공합작은 1927년 4월 이후 실패했지 만, 그전까지 1차 국공합작은 일정하게 성과를 거두 고 있었다. 이러한 중국의 상황을 코민테른 역시 크 게 주목했고, 다른 식민지 · 반식민지 지역의 사회주 의 세력에도 ‘민족통일전선’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코민테른의 지부로 정식 승인을 받은 이후 조선공 산당은 본격적으로 ‘민족통일전선’ 결성 작업에 착 수했다. 1925년 12월 조선공산당의 책임비서로 취 임한 강달영(姜達永)은 사회주의 세력과 민족주의 세 력이 결합한 당(黨) 형태의 조직 결성을 계획했다. 그 리고 이러한 계획을 구체적으로 추진하기 위해 민족 주의 세력과 접촉에 나섰다. 1926년 3월 강달영은 천도교 세력에 속한 권동진(權東鎭), 기독교 세력에 속한 유억겸(兪億兼) · 박동완(朴東完), 그리고 언론계 에 속한 신석우(申錫雨) · 안재홍(安在鴻) 등을 만나 비 타협적 민족해방운동단체의 조직 문제를 상 의했 다. 비록 그 자리에서 조직 결성의 구체적인 사항 에 관해서 합의를 보지 못했지만, ‘민족통일전선’ 결성에 관해 민족주의 세력과 일정한 공감대를 형 성했다는 점에서 중요한 진전이었다. 이처럼 조선공산당이 점차 민족주의 세력과 접 점을 만들어가고 있을 무렵 예상치 못한 사건이 발생했다. 1926년 4월 25일 대한제국의 마지막 황제였던 순종(純宗)이 사망한 것이다. 순종의 사 망 소식이 전해지자 전국적 각지에서 애도단체가 만들어졌고, 순종을 추모하는 사회적 분위기가 형성 됐다. 조선공산당 측은 이러한 사회적 분위기를 활 용해 전국적인 대중시위를 일으키고자 계획했다. 고 종(高宗)의 사망이 3 · 1운동의 기폭제가 되었듯이 순 종의 사망을 기점으로 다시 한번 3 · 1운동 같은 대규 모 대중시위를 전개하려고 계획한 것이다. 조선공산 당은 시위운동을 전개하기 위해 ‘투쟁지도특별위원 회’를 설치하고 산하 청년조직인 고려공산청년회의 책임비서였던 권오설(權五卨)을 책임자로 선임했다. 그리고 그동안 추진해온 당적 조직 결성 계획의 일 환이자 3 · 1운동 당시 민족대표들과 같은 역할을 담 당할 조직으로 ‘대한독립당(大韓獨立黨)’ 결성도 함 께 추진했다. 그러나 조선공산당의 계획은 성공하지 못했다. 일 제 경찰에 의해 대중시위 조직과 ‘대한독립당’ 결성 계획이 사전에 탄로가 났기 때문이다. 이에 조선공 산당을 향한 일제 경찰의 대대적인 검거 선풍이 불 었다. 강달영과 권오설을 비롯한 주요 지도자들은 물론 전체 당원의 60% 정도가 검거됐을 정도로 조 선공산당은 큰 타격을 받았고, 사회주의 세력의 ‘민 조선공산당 창립대회가 개최된 아서원(雅敍園,) (『동아일보』 1927.9.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