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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 2024년 2월 Special Theme  신간회 창립 97주년 특집 “한국독립운동과 신간회” 회단체 결성이 허용되면서, 억압이 완화되고 일정한 자유가 보장된 시기로 말하곤 한다. 그러나 1920년 대 들어 일본정계에 정당정치시대가 도래하고, ‘다 이쇼(大正) 데모크라시’ 분위기속에서 보통선거법이 통과되어 중의원(衆議院) 보통선거가 실시되었음에 도, 일본은 민주주의 체제로 나가지 못했다. 식민지 조선의 상황은 일본 본국에 비해 억압의 정도가 비교 할 수 없이 훨씬 심했다. 노동자와 농민 등 민중의 생 존권은 크게 위협받았고, 청년과 학생들은 열악한 교 육환경 속에서 불평등한 차별을 받았다. 표현과 창작 의 자유, 언론 · 출판 · 집회 · 결사의 자유는 크게 억압받 았고, 검열과 탄압이 일상적으로 전개되었다. 민족적 차별과 불평등도 지속되었다. 일제하 민족운동을 국외에서 활동하던 각종 무장 부대들의 독립운동, 국외 독립운동단체들과 국내의 비밀결사운동으로만 한정해서는 그 범위가 대단히 좁게 된다. 더 큰 문제는 실제 광범하게 전개된 당시 민족운동의 양상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게 한다. 국 외에서 직접 총칼을 들고 일제와 무장투쟁을 전개하 고, 비밀결사를 조직해서 반제국주의의 기치를 높이 드는 것, 대한민국임시정부의 활동은 중요하고 대단 히 의미 있는 것이다. 그렇지만 민족 구성원 대부분 이 거주하며, 광범한 대중이 있는 국내에서의 운동도 국외운동 못지않게 중요했다. 때문에 3 · 1운동 직후 변혁적 정세가 퇴조하자, 국외에서 활동하던 독립운 동가들의 상당수는 다시 국내로 들어와 다양한 민족 운동을 전개하게 된다. 그 결과 일제하 한반도내에서는 국외보다 더욱 활 발히 다양한 민족운동이 전개되었다. 청년과 학생, 노동자와 농민, 지식인과 예술인, 여성들 사이에서 광범한 사회운동이 활발하게 전개되었고, 이들 운동 은 대부분 식민지의 조건하에서 반제국주의를 공공 연히 표방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민족운동의 주 요한 부분을 이루었다. 식민지 조선의 노동자와 농민 의 열악한 생활 여건과 권리를 개선하기 위한 생존권 투쟁은 단순히 지주와 자본가에 대한 경제투쟁에 머 물지 않았다. 그들의 권리투쟁은 일제권력에 기생하 는 지주와 자본가에 대한 투쟁이며, 일제권력의 기반 을 위협하는 것이었다. 식민지 조선 청년과 학생들의 1931년 5월 16일 신간회 전체대회(해소대회) 광경(『조선일보』  1931.5.17) 1928년 6월 28일 열린 신간회 복대표(複代表)대회(『조선일보』  1928.6.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