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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8 2024년 2월 순국 Focus   역사의 시선으로 3월의 전설(99회) 부산의 만세시위(1) 부산상업학교 3월 10일 휴교 일신여학교 학생들 3월 11 · 12일 만세시위 일제 조선침략 교두보 부산에서 대규모 만세시위운동 일신여학교 호주인 교장 · 교사 체포돼 글  이정은(본지 편집위원, 3 · 1운동기념사업회 회장) 부산은 원래 동래부 안의 부산포라는 작은 바닷가 포구였다. 조선의 동남쪽 변방 방어상의 중요성 외 에, 농업 중심의 자급자족 체제에서 해상 무역이 거 의 없는 나라 조선의 항구는 크게 중요하지 않았다. 동래가 중심이었던 부산은 그후 일본과 가장 가까운 항구로서 개항장이 되고, 1910년 강제병합이 되면서 부산부(府)가 되었다. 1912년 부산항 제1부두가 건 설되었다. 이후 부산은 일본, 미국 등 외부 세계와 연결하는 관문이자 이주의 통로였고, 일제 침략의 교두보가 되 어 근대 도시로 성장했다. 부산은 해방 이후 귀환 동 포, 6.25전쟁기의 피난민을 품어 안았으며, 부산항이 있어 수출 중심의 섬유, 신발, 자동차, 수입 설탕, 밀 가공 등 대한민국 근대 산업의 모태가 되었다. 1925 년 진주에 있었던 경상남도청이 부산으로 이전했 고,1963년 1월 1일 정부 직할시로, 1981년 4월 4일 부산시에서 부산직할시로 개편되었다. 경남도청은 1983년 창원으로 이전했다. 일제 조선 침략의 교두보로서 일본인 집단 거류지, 각종 식민지 기관과 무역, 상업 및 산업시설이 발달 부산 초량의 일본인 거주지(1900년) 경부철도 기공식(1901년) 부산세관(1910년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