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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마가 있는 독립운동사 ➋ • 헤이그에서 을사늑약 불법성을 국제사회에 호소하다 103 의 의장인 넬리도프 백작에게 한국이 초청받지 못한 것을 항의했으며, 일제의 주권 침해를 설명하고 의 장 직권으로 회의 참석을 요구했다. 그러나 넬리도 프는 각국 대표의 초청은 주최국인 네덜란드 정부이 므로 그 정부의 외무대신 소관이라고 회피하면서 면 회마저 거절하였다. 그래서 한국특사들은 평화회의 부의장이며 네덜란드의 수석대표인 보폴트를 찾아 갔으나 마찬가지였다. 이어서 특사들은 네덜란드 외 무대신 고드리안(Van Tets Van Goudrian)을 찾았 지만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이밖에도 한국특사들은 미국 대표를 비롯하여 프랑스·영국·독일 등 각국 위 원에게도 회의 참석을 요구하는 협조를 구했으나 실 패했다. 대한제국의 특사들은 결국 만국평화회의에 공식적으로 참석조차 하지 못하고 말았다. 대한제국의 특사들은 만국평화회의에 공식적으 로 참석할 수 없게 되자, 비공식 경로를 통해 일 제의 침략과 한국의 요구를 정확히 각국 대표에게 알림으 로써 한국 문제를 국제정치 문제로 제기시키려는 활 동을 폈다. 1907년 6월 27일자로 한국의 입장과 요 구를 담은 「 공고사」 를 이상설·이준·이위종 세 특사의 연명으로 일본과 영국을 제외한 각국 대표들에게 전 달하였다. 한국특사의 활동이 『평화회의보(Courrier de la Conférence la Paix)』에 자세히 실릴 수 있었 던 것은, 광무황제의 특사 헐버트의 활약이 있었기 때문이다. 헐버트는 독일 베를린에서 영국의 언론인 스테드(William T. Stead)를 만나 한국의 처지를 호 소하여 그의 협력을 얻었다. 스테드는 평화회의 당 시 국제협회(Circle International)의 회장으로 『평화 회의보』의 편집인(Rédigé)이었다. 한국특사들이 각국 대표에게 배포한 「 공고사」 는 헤이그 한국특사들의 숙소 융호텔 이위종이 연설을 한 국제협회 건물(필자 촬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