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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마가 있는 독립운동사 ➋ • 헤이그에서 을사늑약 불법성을 국제사회에 호소하다 101 알리게 하였다. 세 명의 한국특사 외에 광무황제는 미국인 헐버트(Homer B. Hulbert)를 파견하여 한 국특사를 돕도록 했다. 헐버트는 따로 광무황제의 친서를 휴대하고 헤이그 현지에서 함께 활동하였 다. 이들은 광무황제의 신임장을 가진 정식의 대한 제국 특파위원(特派委員)이었다. 헤이그 특사로 밀명을 받은 이준은 1907년 4월 22일 서울을 떠나 5월 9일 블라디보스토크에 도착 하였다. 그리고 룽징에 있던 이상설도 급히 블라디 보스토크로 왔다. 두 사람은 그해 5월 21일에 러시 아 귀화 2세인 차(車)니콜라이의 안내를 받아 철도 편으로 러시아의 수도 상트페테르부르크로 향하였 다. 6월 4일 이범진 공사와 그의 아들 이위종을 만나 사행의 진용을 갖추었다. 한국특사의 부사인 이위종 은 1896년 아버지 이범진이 주미공사로 미국에 건 너갔을 때 미국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고, 프랑스와 러시아에서 중등학교를 다녔으며 군사학교도 마쳤 다. 그래서 영어, 러시아어, 프랑스어를 구사할 수 있 는 능력을 갖추고 있었다. 이위종은 헤이그로 떠나 기 전 만국평화회의에 제출할 「 공고사(控告詞) 」 도 상 트페테르부르크에서 프랑스어로 작성하였다. 헤이그 한국특사의 외교활동 제2회 만국평화회의는 1907년 6월 15일 ‘전쟁 법 규에 관한 협정’을 주요 의제로 개막되었다. 회의에 서 논의된 주요 의안은 국제중재재판소의 운영문 제와 육전과 해전에 대한 규정, 중립국의 지위, 전 리품 처리 등에 관한 문제였다. 만국평화회의는 헤 이그 비넨호프(Binnenhof) 궁전의 ‘기사의 집(De Ridderzaal)’에서 개최되었다. ‘기사의 집’은 현재에 도 네덜란드의 주요 정치적 행사가 자주 개최된다. 헤이그 특사로 파견된 이준 · 이상설 · 이위종(왼쪽부터, 김영사 제공) 한국특사들의 사진이 실린 『평화회의보』 (1907년 7월 5일자, 뉴시 스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