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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8 2024년 1월 순국 PEOPLE  아름다운 사람들 여성독립운동가 열전 찾기 힘든 이애라 지사의 충국순의비 충남 아산에 있는 이애라(李愛羅, 1894-1922) 지 사의 충국순의비를 찾아 나선 날은 2012년 11월 22 일로, 첫 추위가 전국을 얼어붙게 한 날이었다. 집을 나서기 전 아산시 영인면 월선리까지는 확인했지만 번지수까지는 아무리 해도 찾을 길이 없어 무작정 월선리로 달려갔다. 국내 일간지에 이애라 지사의 월산리 충국순의비 사진이 올라있고 약도도 대강 나 와 있었기에 무작정 나선 길이었는데, 막상 현지에 가서 그만 길을 잃고 말았다. 이애라 지사의 남편인 이규갑(李奎甲, 1888-1970) 지사도 워낙 알려진 독 립운동가인지라 근처에 가면 무덤을 안내하는 팻말 이 있으려니 했다. 하지만 안내 팻말은 안 보이고 ‘월 선리’라고만 찍은 네비게이션은 자꾸만 경로 이탈을 알린다. 하는 수 없이 작은 마을로 들어가 보았지만 사람 하나 구경할 길이 없다. 간신히 마을 안쪽 집 마당에 서 가을걷이로 한창인 어르신을 만나 이규갑·이애라 지사 무덤을 물으니 마을 입구의 이장을 찾아가 물어 보란다. 아이쿠! 이장집은 또 어딘고? 물어물어 찾아 간 이장님은 오리고기 식당을 하는 분인데 방금 읍내 로 나들이를 하셨단다. 아뿔사! 오리집 명함에 적힌 번호로 전화를 했다. 부인 때문에 병원에 왔는데 곧 가서 안내해주겠다고 하더니 잰걸음에 달려오셨다. 오십쯤 되어 보이는 인심이 후덕해 보이는 이장님은 묘소를 찾기 어려울 것이라며 선뜻 앞장서서 안내하 신다. 대부분 독립지사 무덤을 찾아가는 길은 안내해주 는 분이 없으면 찾기가 어렵다. 묘소 입구에 작은 이 정표만 몇 군데 세워 주어도 찾아갈 수 있으련만 이 러한 배려가 없다 보니 어려움이 많다. 독립지사들이 모두 국립현충원에 모셔진 것은 아니다. 국가가 관리 하는 곳에 모셨더라면 찾아가 뵙기도 쉽고 관리도 잘 될 텐데 하는 아쉬운 마음으로 마을 뒷산의 제법 경 사진 길을 올랐다. 사람들의 발걸음이 뜸한 곳이라서 무덤으로 오르는 좁은 산길의 풀을 베어 놓지 않았다 면 도저히 다가갈 수 없는 곳이다. 다행히 잡풀은 사 람이 다닐 만큼 깎아놓아 삐죽이 나온 가시나무를 헤 치고 무덤에 오를 수 있었다. 야산 마루에 도착하니 푸른 하늘이 열려있었고 주변에는 소나무며 잡목들 이 빙 둘러 아늑한 곳에 이애라 지사 남편을 비롯한 시댁 식구들의 무덤 여러 기가 보인다. 그 끝 한쪽에 이애라 지사의 이야기가 적힌 충국순 의비가 오뚝하니 세워져 있다. 이애라 지사는 스물일 곱 꽃다운 나이로 일본 경찰에 체포되어 가혹한 고문 을 받고 1922년 블라디보스톡에서 숨진 뒤 주검은 고국으로 돌아오지 못한 채 그 소재조차 모르는 상황 이다. 멀리 이국땅에서 고국을 그리며 한 송이 들꽃 으로 피어있을 이애라 지사가 안쓰럽기만 하다. 이화학당을 졸업한 이애라 지사는 독립운동가인 이규갑 지사를 만나 스무 살에 결혼했다. 남편과 함 께 공주 영명학교와 평양 정의여학교에서 교편을 잡 던 3년 동안이 이 부부의 가장 행복한 시간이었을 것 이다. 이후 스물다섯 살이던 1919년, 전국적인 3·1 만세운동이 펼쳐지자 남편인 이규갑과 한남수·김사 국·홍면희 등과 비밀 연락을 하면서 1919년 ‘한성정 부’로 알려진 임시정부를 수립하기 위한 국민대회 소집에 직접 관여한다. 또한, 독립운동의 열악한 재 정문제를 해결하고자 1920년 애국부인회에 참여하 여 모금운동을 했다. 이 당시 이애라 지사는 어린 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