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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독립운동가 열전 • 어린 핏덩이 내동댕이친 일경에 굴하지 않던 “이애라” 87 오늘도 월선리 선영엔 십일월의 찬바람만 휑하니 지나갑니다. 이는 필자가 이애라 지사의 ‘충국순의비(忠國殉義 碑)’가 있는 충남 아산 월선리에서 쓴 시다. 이곳에는 이애라 지사의 남편 이규갑 지사 일가의 무덤이 있 으나 이애라 지사는 함북 웅기(雄基)에서 일경에 체 포되어 피살, 순국한 뒤로 그 주검을 찾지 못해 이곳 선영에는 묻혀있지 않다. 그 대신 이곳에는 충국순 의비가 세워져 있는데 비문에는 “… (이애라 지사는) 품성이 현숙 효순하여 범사에 관후하였다. 이화학당 을 졸업하고 양육사업에 종사하다가 서기 1919년 3 · 1독립만세 때에 애국부인회를 지도하다가 일경에 체포되어 서울, 평양, 공주에서 옥중생활을 하였다. 그 후에 부군 리규갑 씨가 독립운동을 하는 시베리 아로 밀행하다가 함경북도 승가항에서 왜적에게 체 포되어 가혹한 고문을 받고 (가운데 줄임) 순국하다” 라는 글귀가 새겨져 있다. 오늘날 ‘이애라’라는 이름 석자의 여성독립운동 가를 아는 이들은 그리 많지 않다. 그러나 국가보훈 부가 설립(1961년)되기 10년 전에 나온 『자유신문』 (1951.12.10) 보도 “순국선열에 보은, 유가족 생활비 부조(扶助)” 기사에는 안중근, 안창호, 이강년, 허위, 홍범도, 김좌진, 고광순, 안희제, 손병희, 채응언, 강 우규, 윤봉길, 이봉창 등 쟁쟁한 남성독립운동가들 118명 이름 속에 유일한 여성 이애라 지사가 있다. 적어도 1951년까지 여성독립운동가라고 하면 이애 라 지사가 꼽힐 만큼 그의 이름은 독보적인 존재였 다. 그러나 이후 이애라 지사의 이름은 수면 아래로 숨어버린 느낌이다. 왜일까? “순국선열에 보은, 유가족 생활비 부조” 라는 『자유신문』(1951.12.10)  기사에는 쟁쟁한 118명의 남성독립운동가 이름과 함께 유일한  여성독립운동가로 이애라 지사 이름이 나온다. 이 신문의 독립운 동가 이름을 알기 쉽게 정리한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데이터베이 스 자료(아래) 이애라·이규갑 부부독립운동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