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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2 2024년 1월 순국 PEOPLE  아름다운 사람들 특별기고 가 있었다-필자 주)과 기마대 · 헌병대 등 군경 약 1,000명을 동원하여 4중 포위하고 체포에 나섰다 (1.22.04시). 그러나 김상옥의 쌍권총에 의해 보이 는 자마다 쓰러져(16명 후송 보도) 접근을 못 하고 3시간 이상 끌게 되었다. 하지만 중과부적에 탄환 도 소진됨을 의식한 김상옥은 마지막 탄으로 장렬 히 자결 순국했다(“자수하면 살려준다”는 일경에 대해 “분노-호통”). 김의사가 순국한 이후에도 접 근을 못하던 경찰은 그의 모친을 불러 생사를 확 인시킨 후에야 달려들었다고 한다. “서울 제일의 외침 대항 전적지” / “세계사에 유례 없는 의열 시가전 승리” 여기서 우리는 두 가지 특이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첫째, “1 대 1,000 서울 항일 시가전 3시간 승 리” 현장은 “서울 제일의 외침 대항 전적지”이다. 둘째, 그 시가전 승리는 “세계사에 유례 없는 쾌거 –한민족의 긍지”로 자리매김 될 수도 있다는 점이다. 우리겨레는 역사상 930여 차례나 외침을 겪었지 만, 번번이 물리친 강인한 민족이다. 서울도 숱한 외 침에 시달렸다. 그러나 서울의 제대로 된 항전 기록 은 찾기 어렵다. 그 점에서 김상옥의 쾌거 현장이 “서 울 제일의 외침 대항 전적지”로 될 수 있다고 본다. “비전투원인 애국투사 1인(김상옥)이, 적 점령 하 의 자국 수도(일제 하 서울)에서 적(일본)군경 1,000 명을 상대한 ‘1 대 1,000 의열 시가전 3시간 승리” (적16명 처단, 마지막 탄으로 자결 순국)는 “세계사 에 유례 없는 쾌거 – 한민족의 긍지”로 될 수 있다는 생각이다. 국내외 관련학계 등에 조회해서 ‘공인’ 받 아 크게 현창함이 바람직한 일이다. 그것은 종로서 폭파가 조선총독 처단에 저해요 인 이 될수 있었지만(처단 성공시도 일제축출은 어려운 반면, 보복피해가 컸을 가능성이 있음), 그런 가운데 서도 “1 대 1,000 시가전 승리”라는 기적을 이룬 ’의 거’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특히 대한민국임시정부가 추도식(1922.2.17)과 순국 15주년 기념식(1937.1.22) 을 엄수할 만큼, 큰 공훈을 세운 선열에 대한 후대의 도리를 잊어서는 안되기 때문이다. 김상옥 의사의 시가전을 보도한 조선일보 기사(1923.1.14) 홍익대학교와 국방대학원을 졸업한 뒤 동국대학교 대학원에서 정치학박사학위 를 받았다. KBS전문위원, 명지대학교 현대사상연구소 연구위원, 김상옥의사기 념사업회 이사, 순국선열유족회 부회장, 광복회 부회장, (사)의병정신선양중앙회  회장 등을 역임했다. 현재 의병정신선양중앙회 명예회장이다. 저서로 『북한전 서』(공저), 『안성 4 · 1독립항쟁』, 『서울 한복판 항일시가전의 용장 김상옥의사』,  『대한민국의 정통성』 등이 있다. 주요논문으로 「‘논개’는 기생 아닌 의병순국선 열」, 「교도민주주의」 등이 있다.  필자 윤 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