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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의 독립운동가 • 이승만 전 대한민국 대통령 75 지회 기관지로 정하고, 비폭력주의를 표방한 동지 회의 정강을 발표했다. 아울러 한인의 독립운동에 필요한 경제력을 기르기 위해 동지합자회사 설립을 계획했다. 1925년 12월 자본금 3만 달러로 동지식산회사를 설립하고 총재를 맡았다. 이 회사는 선박 제조용 목 재와 가구 등을 만들어 팔거나 숯가루를 제조해 폭 약 제조회사에 판매함으로써 자금을 확보하려 했다. 그러나 동지촌 부지매입비와 숯가마 구입비로 자본 금을 소진한 상태에서 경영 미숙과 미국 전역을 강 타한 대공황의 여파로 자금난을 겪다가 1931년 4월 경 파산하고 말았다. 1932년 11월 임시정부로부터 국제연맹에서 한국 독립을 탄원할 특명전권대사에 임명되었다. 1933 년 1월 스위스 제네바에 도착하여 국제연맹 중국대 표단과 함께 일본의 만주침략을 규탄하는 외교활동 을 벌였고, 2월 국제연맹 회원국 대표들과 세계 주 요 언론사 기자들에게 한국독립을 청원하고 임시정 부 승인을 요청하는 공한을 보냈다. 또한 각국의 외 교관이나 언론인과 교류하면서 동양평화를 이루기 위해서는 한국의 독립이 우선이라며 한국독립을 역 설했다. 이로써 2월 24일 국제연맹 본회의에서 일본 의 만주침략을 규탄한 내용의 「리튼보고서」가 채택 되고 일본이 국제연맹에서 탈회하는데 간접적으로 기여하기도 했다. 일본의 국제연맹 탈회 후 미국총영사와 국제연맹 중국대표를 만나 미·중·한 3국이 소련과 합세하여 일본의 대륙팽창을 응징하는 방안을 제안했다. 이 4 개국 항일연대안을 실현하고자 러시아 입국비자를 얻어 1933년 7월 모스크바에 들어갔다. 그러나 만 스위스 제네바에서의 이승만 송헌주(좌), 김규식(우)과 함께 외교독립활동을 전개하는  이승만(독립기념관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