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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8 2024년 1월 순국 PEOPLE  아름다운 사람들 이달의 순국선열 쉬지 않고 농촌사업에 전념 마을교육사업 외에도 농가부업, 위생생활 과 환경개선, 저축장려 등 지역 사회 발전에 필요한 운동들을 전개해 나갔다. 학교 주변 에 뽕나무 심기와 누에치기를 권장하고 감 나무 등 유실수도 마을주민에게 나누어주었 다. 여기서 나오는 수입 중 일부는 강습소 유 지비나 농기구 구입으로 사용했다. 마을 부 녀회는 이러한 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했고, 이는 부인들이 가사에 국한되었던 활동범위 를 넓히며 스스로의 사회적인 존재로서의 가 치관을 확립하도록 하는 계기가 되었다. 학 생들에게 학용품 등을 주기 위하여 수업시 간 이외에 밭에 나가 김을 매는 등 노동도 마다하지 않았다. 또 오전, 오후반 수업과 야학수업, 가정방문을 계속해 나갔다. 그리 고 10리 떨어진 야목리로 가서 윤홍림(尹洪 林)과 함께 농촌진흥운동에 관한 토론을 정 기적으로 열었다. 이는 보통사람이면 전혀 감내할 수 없는 어려운 일이었다. 과중한 업 무로 인해 몸은 병들고 지치게 되었으나, 농 촌계몽운동에 대한 열정과 신념으로 쉬지 않고 활동을 계속해 나갔다. 최용신의 노력으로 마을의 기반이 어느 정도 윤곽을 잡아갈 때, 돌연 일본 유학을 결심하게 된다. 장기적이고 실천적 농촌계 몽운동의 필요성을 절감했기 때문이다. 그 는 “이만큼 자리잡은 샘골을 위하여 지금으 로부터 새로운 농촌운동의 전개가 필요하 다. 그러나 나의 좁은 문견으로는 도저히 능 력이 부족하다. 만일 이대로만 간다면 곧 침 체되고 말 것이며 이 모양조차 유지해가기가 곤란할 것이다. 이곳을 이 땅의 농촌운동의 한 도화선으로 만들자면 새로운 지식과 구상 이 필요하다.”라고 토로했다. 1934년 새로운 지식과 학문을 충족하기 위해 일본 유학을 결심하고 그 해 3월 고베 여자신학교 사회사업학과에 청강생으로 입 학하였다. 새로운 환경은 향학열로 이어지는 등 지적 호기심을 자극했다. 하지만 학업에 정진 중에 뜻밖에도 각기병에 걸려 학업을 중단할 수밖에 없었다. 귀국 후 샘골교회 신자들과 함께한 최용신(둘째줄 왼쪽에서 네 번째) 최용신의 유언(최용신기념관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