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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 2024년 1월 순국 PEOPLE  아름다운 사람들 이달의 순국선열 좌왕하던 호 위선 비조환 ( 飛 鳥 丸 ) 의 경비병들과 수행원들은 대항 사격을 가해 왔다. 그리하여 쌍 방간에는 치 열 한 교 전 이 벌 어 졌 고, 이 틈을 이용하여 사 이토 일행을 태운 웅비호 가 쏜살같이 줄행랑을 치는 바람에 조선 총 독 처단의 목적을 달성하지 못하고 말았다. 조선총독부 · 중국 동북 군벌정권의 ‘삼시 협약’ 체결과 선생의 피체 이로 말미암아 국경 지방에 대한 조선 총독부의 경비가 강화되었고, 독립군 부 대에 대한 탄압 작전이 자주 이루어졌다. 하지만 이후에도 선생은 소대원들을 이끌 고 국내 진공작전을 지속적으로 전개하였 다. 이에 따라 같은 해 7월 16일 평북 강 계군 곡하면 쌍부동으로 진입한 뒤, 일제 의 통신시설을 파괴하고자 신의주와 강계 를 잇는 전선을 절단하고 전신주 다섯 개 를 잘라 넘어뜨렸다. 그리고 같은 군 어운동 (漁雲面)에서도 전신주 네 개를 넘어뜨려 버 렸다. 이렇게 하여 일제의 통신을 두절시킨 뒤, 신용섭(申龍燮) 등 여섯 명의 소대원을 거 느리고 강계군 공서면 두흥동의 계인계(桂仁 桂)와 인근 염진희(廉珍熙) 집에서 군자금을 징수하였다. 며칠 뒤 다시 강계군 시중면 시 천동 김찬원(金燦元) 집에서도 두 차례에 걸 쳐 군자금을 갹출하는 등 지속적인 군자금 모집 활동을 벌였다. 또한 선생은 친일 밀정 처단 투쟁을 벌이기 도 하였다. 1924년 6월 평북 강계군에서 군 자금 모집 활동을 전개하던 중, 어운면 동부 동에서 밀정 노릇을 하던 자를 잡아다가 장갑 골에서 총살, 처단함으로써 부일 친일배들에 대해 경각심을 일깨워 주었다. 그리고 1925 년 6월 19일에는 24명의 소대원을 거느리고 강계군 창곡산에서 강계경찰서의 수색대를 습격하여 오랫동안 치열한 공방전을 전개하 1924년 5월 16일 함경남도 삼수군 신갈파진을 출발하는 사이토 순시선 일행 (우남위키 제공)  「적괴 재등을 습격」, 『독립신문』 보도 기사(1924.5.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