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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순국선열 • 이의준(李義俊) 선생 59 청석에서는 삼국지에서 본 장비(張飛)와 같 다고 속삭였다”고 하는 기사가 선생에 대한 인상을 간접적으로 전하고 있다. 이로 볼 때 그는 매우 건장한 체격에 의지가 굳은, 그야 말로 전형적인 무골이요 불요불굴의 독립 군 용사로 생각된다. 선생은 1923년 1월 향리인 평북 위원군 과 압록강을 경계로 마주보고 있던 중국 동 북(만주)의 집안현(輯安縣)으로 망명한 뒤, 유수림자(楡樹林子) 두도구(頭道溝)에 근거 지를 둔 대한통의부(大韓統義府) 의용군(義 勇軍) 제1중대에 투신하였다. 당시 만주 독 립군은 1920년 10월 경신참변(庚申慘變)과 이듬해 6월 자유시참변으로 큰 타격을 입 었다. 그 뒤 남만주지역의 여러 독립군단들은 새로운 활로를 모색하기 위해 통합운동을 전개하여 갔다. 이러한 노력은 1922년 8월 환인현 마권자(馬圈子)에서 대한통의부(大 韓統義府)가 결성되는 결실을 맺었다. 이로 써 1920년 말 경신참변 이후 흩어졌던 재만 독립군 진영은 일단 정비되었다. 이 통합군 단은 조직체제를 한층 강화하는 한편, 한인 동포의 자치에도 적극적인 노력을 기울여 확 고한 항일 무장투쟁 기반을 조성해 갔다. 선생은 대한통의부 의용군 독립군에 참여 하여 채찬(蔡燦, 일명 白狂雲)이 중대장으로 있던 제1중대에 소속되었다. 이어 제2소대장 으로 선임되었다. 이후 곧바로 국내 진공작 전을 추진하였는데, 1923년 6월 6일 처음으 로 이루어졌다. 이 날 김정욱(金貞旭) 등 4명 의 소대원들을 이끌고 국내로 진입하여 독립 군자금 모집 활동에 나섰다. 그러다가 평안 북도 강계군 어포면 풍룡동(豊龍洞) 골짜기에 서 평북경찰부 수색대와 맞닥뜨려 교전하는 바람에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지는 못하였다. 그러나 엿새가 지난 6월 12일의 국내 진 공작전에서는 괄목할 만한 성과를 거두었다. 이 날 송선호(宋善鎬) 등 3명의 소대원들과 함께 평북 위원군 봉회면 노동령(蘆洞嶺) 부 대한통의부의 포고문(1924.9.28) 남만주지방에서 활약한 참의부 독립군(독립기념관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