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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ecial theme • 사회주의 독립운동가 김사국·박원희 부부와 동생 김사민의 비극적 서사 53 1920년 9월 출옥 한 김사국은 조선노 동대회에 동생 김사 민과 간부로 참여하 였다. 조선노동대회 는 1920년 5월 김광 제, 문탁 등이 창립한 노동단체였다. 김사 민은 조선노동대회 간사로 활동하였다. 조선노동대회는 경성 을 중심으로 노동과 노동문제에 대한 강 연회 등을 하며 점차 조직을 확대해 갔다. 김사국은 1921년 1월 창립된 서울청년회에 이사 로 참여하였다. 서울청년회는 청년단체였지만, 점차 사회주의 사상을 수용한 사상단체로 바뀌어 갔다. 이 무렵 무산자동지회, 신사상연구회(이후 화요회), 북풍회, 조선노동당 등 사회주의 사상을 선전하고 지향하는 사상단체들이 만들어졌다. 1922년 10월 김사국, 이영, 김영만, 임봉순, 장채 극, 김유인 등은 서울청년회 내부에 비밀 ‘공산주의 그룹’을 창립하였다. 1923년 2월 20일 비밀 그룹의 이름을 ‘고려공산동맹’이라 불렀다. 1920년대 사회 주의운동에서 ‘화요파’와 더불어 운동의 양대 산맥 이라 할 수 있는 ‘서울파’가 탄생한 것이다. 고려공산 동맹은 전국에 조직을 확대하였고 1923년 1월부터 3월까지 국내에서 전조선청년당대회를 준비하였다. 1924년 3월 24일부터 3월 30일까지 1주일 간 개최 된 전조선청년당대회는 94개 단체 대표 154명과 50 여명의 개인이 참가하였다. 전조선청년당대회는 1 분과는 교육·종교·여성문제, 2분과는 노동·경제문제, 3분과는 민족·사회·청년문제 등을 토의하고 결정했 다. 김사국은 블라디보스토크에 있는 코민테른집행 위원회 원동부에 파견되어 국내의 전위정당 창립을 모색하였다. 김사민, 국내 초유의 사회주의 재판 ‘신생활사 사건’ 에 연루되다 김사국의 동생 김사민은 1920년 5월 창립된 조선 노동대회의 간사로 활동하였다. 그 해 7월 6일 그는 개성 장대전(將臺前) 예배당에서 열린 노동대회강연 회에서 노동대회 회장 김광제와 함께 참가하여 ‘힘 있거라’라는 제목의 연설을 하였다. 김사민은 1920 임시정부 수립을 위한 「국민대회취지서」(독립기념관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