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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ecial theme • 민족 독립을 위한 삶, 도산 안창호와 부인 이혜련 45 마를 입고, 소파에 앉아서 사진을 찍었다. 그리고 드 류 박사는 신문기자에게, 안창호는 외국인들에게는 특별히 영특하고 연설에 뛰어난 자질을 가진 청년이 라고 소개하였다. 신문기자는 도산 부부를 위해 『샌 프란시스코 클로니컬』 신문사에 데리고 가서 건물을 구경시켜 주었다. 도산 부부의 미국생활 안창호와 이혜련 부부는 결혼식을 올리자마자 미 국으로 건너와 신혼생활을 시작하 게 되었다. 이혜련은 샌프란시스코 에서 신혼생활을 하면서 의식주를 해결해야만 했다. 가장 중요한 것이 먹는 일이기 때문에, 음식을 만들어 야만 했던 것이다. 이혜련은 장녀로 어머니가 일찍이 세상을 여의였기 때문에, 어릴 때부터 아버지와 동생 들을 위해 음식을 만들었다. 그래서 웬만한 음식은 척척 조리할 수 있는 충분한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 데, 미국에 와서는 음식 재료가 충분 하지 못하고, 또 서양식 재료이기 때 문에 음식을 조리하는 것이 쉽지 않 았다. 그럴 때면 도산이 늘 음식 조리 법을 가르쳐 주었고, 자연스럽게 의 견 차이가 생겨 조그마한 다툼도 벌 어졌다. 이혜련은 원래 한식도 잘하 였고, 얼마 후 미국 음식도 훌륭하게 조리할 수 있게 되었다. 도산의 아내 이혜련은 미국에 온 지 2년 만인 1905년 3월 29일 로스앤젤레스의 한 교 회에서 교인들의 도움을 받아 큰 아들 필립을 낳았 다. 이 시기 도산은 샌프란시스코에서 미주 한인들 의 연합기관인 ‘공립협회’를 창립하였다. 이혜련은 아들과 함께 리버사이드에서 가정부, 요리사, 청소 부, 재봉사로 일을 하며 돈을 벌었다. 도산 부부가 미국에서 생활하는 동안 고국은 일제 에 의해 을사늑약이 강제로 체결되고 국권을 침탈당 하면서 망국으로 치닫고 있었다. 망해 가는 나라를 안창호가 이혜련에게 보낸 편지(1910.8.10) 도산 가족 거주지(로스앤젤레스 웨스트 37번가 954번지). 현재 USC대학 ‘한국학 연구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