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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ecial theme • 3대 유림 독립운동의 중심 추, 이중업 · 김락 부부 37 아버지 이만도가 1910년 8월 나라 가 무너졌다는 소식을 듣고, 24일 동 안 단식으로 자정(自靖) 순국하자, 이 중업은 아버지의 투쟁정신을 이어서  1919년 파리장서운동 등에서 활약 하였다. 이중업의 아내 김락은 1919 년 안동 예안 3 · 1운동에 참여했다 가  일본군 수비대에 끌려가 조사를  받다가 실명하고, 11년 간이나 고통 을 겪은 끝에 1929년 2월 사망했다.  이중업 · 김락 부부의 항일투쟁은 항 일의병, 자정순국과 만주망명, 그리 고 3 · 1운동과 파리장서운동, 제2차  유림단의거와 군자금 모집 활동 등  1890년대부터 1920년대까지 이어 지는 3대 유림 독립운동의 중심에 있 었다. 일제 『고등경찰요사』에 기록된 이중엽 · 김락 부부 이중업(李中業, 1863~1921)과 김락(金洛, 1863~1929) 부부가 함 께 언급된 일제강점기 자료가 있다. 1934년 조선총독부 경북경찰부가 고등경찰을 교육하고 경찰서에 참고자료로 비치하기 위해 대외 극비 로 발간한 책인 『고등경찰요사(高等警察要史)』이다. 이 자료의 ‘총설’에 “안동 양반 고(故) 이중업의 처는 1919년 소요 당시 수비대에 끌려가 조 사를 받은 끝에 실명하고, 그 후 11년 간 고통을 겪은 끝에 1929년 2월 사망했다. 이 때문에 일본에 대한 적의(敵意)를 밤낮으로 잊지 못한다고 그 아들 이동흠(李棟欽) 자신이 고백하고 있는 것이 그 하나의 사례이 다”라는 기록이 보인다. 『고등경찰요사』에 언급된 이중업은 퇴계 이황(李滉, 1501~1570)의 12세손이다. 자(字)가 광초(廣初)고 호(號)가 기암(起巖)으로, 만초(萬初) 이상룡(李相龍, 1858~1932), 범초(範初) 김형모(金瀅模, 1856~1930) 와 함께 삼초(三初)로 불린 인물이다. 1919년 3월 김창숙 등과 함께 파 리강화회의에 독립 청원을 하자는 파리 장서운동을 전개하 였으며, 유림대표자 격으로 1921년 7월 중국 쑨원[孫文] 등에 게 보내는 청원서를 휴대하고 중국으로 가기 직전 병사하였 다. 2년 4개월 동안 의 독립운동 사실이 확인되어 1990년 건 국훈장 애족장에 추 서되었다.이중업의 처, 김락은 의성김씨 김진린의 막내딸로 『고등경찰요사』 김락 · 이동흠 서술 부분(경상북도독립운동 기념관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