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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 2024년 1월 Special Theme    광복 제79주년 특집 부부 독립운동가의 삶을 다시 본다 구 열강의 서세동점 정책이 동아시아 변화와 일본 제 국주의 성장으로 이어지며 외세침략이 가시화되자 민의(民義)는 근대의병운동으로 일어났다. 1895년 을미의병과 1907년 정미의병에서 활약한 최초 여성 의병장 윤희순(尹熙順)도 그 중의 인물로, 화서학맥 도(華西學脈圖)에 등재된 유일한 여성이다. 화서학파 이항로(1792~1868)는 인(仁)과 의(義), 인도(人道)를 강조하며 도학파의 선봉에 섰던 인물이 다. 정도(正道)를 밝히고 정의를 실천하여 위정척사 운동과 의병운동이 전개되었을 때 화서집안 여성에 게도 영향을 주었다. 윤희순도 이항로-김평묵-윤익 상(부친)-윤희순으로 이어진 친가(親家)학맥과 이항 로-유중교-유제원(윤희순의 남편)으로 이어진 시가 (媤家)학맥과 닿아 있다. 윤희순의 일생을 살펴보면, 시백부 유인석 의병장, 시부 유홍석 의병장, 남편 유 제원(柳濟遠), 아들 유교상(柳敎相) · 유돈상(柳敦相) · 유 민상(柳敏相)과 함께 25년간 의병운동과 15년간 독 립운동을 쉼 없이 실천했다. 3대에 걸쳐 항일구국운 동을 실천했던 집안에서 윤희순은 여성 의병의 상징 성을 넘어 부부 독립운동·일가(一家) 독립운동을 실 천한 인물로 주목된다. “오랑캐 원수 놈들아 남의 나라 침범하여 무얼 바 라면서 의기양양한 단 말이냐. 짐승 같은 왜놈 원수 들아 남의 나라 침범 말고 … 조선 안사람이 대표로 경고 한다 조선 선비의 아내 윤희순” 윤희순의 격문은 창의명분의 실천이었다. 1895년 명성황후 시해 사건에 이어 단발령이 강행되자, 위 정척사운동의 중심에 있었던 고흥 유씨 일가는 창의 의 명분을 밝히고 의병운동의 대열에 섰다. 시부 유 홍석과 남편 유제원을 통해서 의병 활동의 상황을 전 난천자 입구의 다리 천자 우물. 따뜻한 물이 나와서 붙여진 이름이다.   윤희순 일가가 개척한 고려구 마을 터를 찾아간 필자(2019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