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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문화 사랑방 • 거문고 이야기 119 험한 세상사를 잊고, 벗과 함께 술을 권커니 자커니 하다가 거문 고를 타니 누가 주인인지, 누가 손 님인지 모를 정도가 되었다니 술 탓일까, 거문고 탓일까? 벗과의 자리뿐만이 아니라 혼자 즐기는 거문고의 세계도 절제와 내면세 계로의 침잠을 통하여 자연과 하 나가 되고 소리(琴)와 하나가 되는 주객일체의 경지에 이른 듯하다. 금(琴)은 중국음악, 거문고는 한국음악을 연주하는 악기 고구려의 옛 서울인 만주 지안 현[輯安縣]에서 발굴된 고구려의 고분 무용총 벽화와 제17호분에 거문고의 원형으로 보이는 4현 17괘의 현악기가 그려져 있고, 또 안악에서 발굴된 고분 제3호의 무안도(舞樂圖)에도 거문고 원형 으로 보이는 악기가 그려져 있다. 이 그림에서는 줄이 여섯이 아니 고 4줄이며, 음의 높낮이를 조절 하는 괘가 16개가 아니고 17개로 서 조금 다르지만, 악기를 무릎 위 에 놓고 손에 술대를 쥐고 연주하 는 모습으로 보아 거문고의 원형 일 것으로 짐작된다. 《삼국사기》 악지의 현금(玄琴) 부분을 보면 왕산악이 진나라에 서 보낸 금 (琴)을 개조 하여 거문고 를 만들고, 일백여 곡을 작곡하여 연 주했더니 검 은 학이 날 아와서 춤을 추었다고 한 다. 그래서 현학금(玄鶴 琴)이라 했 다가 나중에 는 그냥 ‘현 금(玄琴)’이 라고 했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중국음악에 사용되던 금이 한 국에 와서는 한국음악에 쓸 수 있 도록 고쳐져 거문고가 되었다. 그 것은 중국음악과 한국음악이 같 지 않다는 말이 된다. 왕산악이 작 곡했다는 1백여 곡도 중국음악과 다른 우리 겨레에 맞는 음악이었 을 것이란 이야기다. 그러니까 금 은 중국음악을 연주하기에 편리 한 악기이고 거문고는 한국음악 을 연주하려고 만든 악기라고 할 수 있다. 거문고나 가야고의 “고”는 현악 기[금, 琴]를 뜻하는 우리말이 다. 그래서 가야금을 가얏고로 말하 기도 한다. 국어학자 이탁(李鐸)은 ‘국어학 논고’에서 고구려라는 이 름 가운데 ‘고(高)’만이 나라 이름 이고 ‘구려(句麗)’는 나라를 뜻하 는 것이며, “高”를 ‘감’이라고 읽는 다고 했다. 그래서 거문고는 고구 려의 나라 이름을 뜻하는 '감(또는 검)'과 고대 현악기를 두루 일컫 던 ‘고’가 붙은 말로서 ‘감고’ 또는 ‘검고’가 거문고로 변한 것으로 보 았다. 가야금은 손가락으로 퉁기거나 중국 지린성(吉林省) 지안의 장천 1호분 벽화. 여성의 거문고 반주 에 맞춰 남자가 춤을 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