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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마가 있는 독립운동사 • 미주 한인의 첫 도착지 · 출발지, 한국독립운동의 중심지 호놀룰루 99 위했으며, 한인들 자치조직을 만들어 『자유한인보』 라는 주간 잡지를 발간하기도 했다. 포로수용소에 서 미군들이 제공하는 의식주로 좋은 대우를 받았 으며, 간단한 노동 외에 여가에는 영어강습을 받아 영어에 능통한 사람도 있었다. 하와이 한인포로들은 일제의 잔혹한 착취를 당하 고 숱한 죽음의 고비를 넘기고 다행히 미군에게 포 로가 된 사람들이었다. 한인포로들은 대부분이 일 본 육군과 해군에서 소속된 군속(노무자)으로 혹심 한 노역을 당했다. 비록 미군의 전쟁포로이기는 하 지만, 미국이 대일전에서 승리하기를 염원하고, 조 국이 일제의 지배로부터 해방되어 자유롭고 민주적 인 독립국가가 되기를 갈망했다. 그래서 미국 당국 자들도 한인포로들을 ‘믿을 수 있다(trustworthy)’ 고 평가했으며, 다른 나라의 포로와 달리 모범적으 로 생활하여 칭찬을 받았다. 한인 전쟁포로들의 생활은 석축 쌓기, 미군 식당 의 그릇 씻기, 페인트 칠하기, 꽃밭 가꾸기 등 약간 의 노역도 하였다. 그리고 포로수용소에서 한인들 은 『자유한인보』라는 자신들의 잡지를 만들어 서로 돌려보았다. 『자유한인보』는 주보(週報)로 발간되 었는데, 현재 제3호와 제7호, 그리고 제7호 부록(주 소록)이 남아 있다. 이 잡지는 포로수용소의 주 보계 (週報係)에서 맡아서 발간했는데, 이종실 · 박순동 · 박 형무 세 사람이 담당했다. 주보계의 세 사람은 학병 출신으로 버마전선에 일본군을 탈출한 뒤, 영국군 에 투항하여 미국 OSS훈련을 받았던 사람들이다. 『자유한인보』 제3호는 1945년 11월 15일자로 발간되었으며, 제7호는 12월 12일자로 종간되었 다. 『자유한인보』는 제7호까지 발간되었는데, 60쪽 정도의 주간행물로 하월 대령이 주는 미국사회생 활 소개물, 독자들의 투고, 그리고 한국에 관한 신문 소식을 게재하여 2명 앞에 1권씩 배포하였다. 백색 마닐라 보르의 표지에 『자유한인보』라는 표제 아래 태극기와 무궁화가 3색 인쇄되었으며, 내용은 모조 지로 되어있다. 1945년 태평양전쟁이 끝난 후 한인포로들의 귀 환은 두 차례에 걸쳐 이루어졌다. 제1진 한인포 로 2,614명은 제네럴 언스트호(General O. Ernst) 를 타고 태평양을 건너 고국으로 향했다. 한인포로 제2진 105명은 미국선 멕시코 빅토리호(Mexico Victoria)를 타고 1946년 8월 8일 고국의 땅 인천 에 도착하였다. 국민대학교에서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독립기념관 연구위원, 문화재전문위원 등을 역임하였다. 주요 저서로는 『미주한인사회의 한국독립운동』, 『미주한인사회 의 독립운동가』, 『권승렬 평전』, 『일제의 한국농업정책사연구』, 『일왕을 겨눈 독립투사 이봉창』 등이 있다. 필자 김도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