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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6 2023년 12월 테마가 있는 독립운동사 ② 순국 Focus   역사의 시선으로 3 · 1독립선언서를 볼 수 없었던 하와이에서는, 영자 신문에 실린 선언서를 한국어로 다시 번역하여 『국 민보』 1919년 3월 29일자에 실었다. 3 · 1운동의 정수라고 할 수 있는 귀중한 독립선언 서를 국외로 가져가 국제사회에 알리는 데에는, 맥 클래치(Valentine Stuart McClatchy, 1857~1938) 라는 미국 언론인의 역할이 지대하였다. 맥클래 치는 캘리포니아에서 발행되는 『새크라멘토 비 (Sacramento Bee)』의 편집인이자 AP통신사의 이 사였다. 그는 극동지방을 여행 중인 1919년 3월 3 일부터 이틀 반동안 서울에 들렸다가, 3 · 1독립선언 서 영문 번역본을 입수했다. 맥클래치는 일본에서 신요마루[春洋丸]를 타고 1919년 3월 27일 하와이 의 호놀룰루항에 도착하였다. 그는 한국에서 일어 난 3 · 1운동을 직접 목격하고, 3 · 1독립선언서의 영 어 번역본을 자신의 혁대에 넣어가지고 왔다. 호놀 룰루에 도착하자마자 하와이의 영자신문인 『애드 버타이저』에 3 · 1독립선언서 영어 번역본을 제공했 다. 그리고 맥클래치는 4월 2일 샌프란시스코항에 도착했고, 북미에서는 최초로 자신이 발행인 으로 있는 『새크라멘토 비』 1919년 4월 3일자에 3 · 1독 립선언서 전문을 실었다. 3 · 1독립선언서는 AP통 신사에도 제공되어 전 세계에 한국이 독립을 선언 했다는 사실이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맥클래치는 『새크라멘토 비』에 한국에서 3·1 운동에 대해 자세한 기사를 직접 작성하였다. 자 신이 서울에서 목격한 3 · 1운동을 “세계사에서 이상을 위해 조직화된 수동적 저항의 가장 위대 한 사례”라고 극찬하였다. 그는 3 · 1운동의 실상 을 미주의 언론에 전파했으며, 그 자신이 직접 쓴 3 · 1운동에 대한 신문기사를 『아시아의 독일(The Germany in Asia)』이라는 책자로 발간하여 한국 독립운동을 널리 알렸다. 하와이 동포들이 제공한 이봉창·윤봉길의사 의거 자금 이봉창 · 윤봉길 두 의사가 거사를 단행할 수 있었 던 것은 하와이 동포들이 중국 상하이의 백범 김구 에게 독립운동 자금을 보내주었기 때문이다. 김구 의 『백범일지』에는, “경제적으로는 정부 명의마저 유지할 길이 막연하였다. 청사 가옥세가 불과 30원, 고용인 월급이 20원을 넘지 않으나, 집세 문제로 집 주인에게 종종 소송을 당하였다”라고 했다. 백범은 미주에서 가장 많은 한인들이 살고 있는 하와이에 편지를 보냈다. 백범의 진실성 있는 편지를 받고 하 와이 동포들은 임시정부를 돕게 되었다. 『백범일지』에 따르면, 하와이의 안창호(安昌鎬)· 임성우 등은 “당신이 정부를 지키고 있는 것을 감 사히 생각한다. 그런데 당신 생각에 무슨 사업을 하 호놀룰루 한인기독교회의 정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