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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8 2023년 12월 순국 Focus   역사의 시선으로 순국스크랩 산하 도쿄조선노동조합은 12지부를 두었다. 이들 조직의 구체적인 선동 · 선전 활동의 내용을 보면, 1928년 6월 17일에는 도쿄조선노동조합 서부 지부 주최로 폭압정치반대 대연설회를 개최했다. 이 날 서부지부 구성원들은 삐라 수만 매를 전 시가지에 뿌렸다. 이후 연설회는 해산되고 곧바로 모인 군중들 은 데모대로 변모되었고, 500여명의 투사들은 와세 다(早稻田)대로를 메웠다. 아울러 도쿄조선노동조합 은 1928년 7월 대규모의 선전, 선동 활동으로 조선 증병과 치안유지법 반대 주간을 맞이하여 일제의 침 략성을 폭로했다. 이미 조선에 4~5만 명의 무장한 군 대와 경찰이 주둔하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군비 증설 을 단행함은 수 천 명의 노동자, 농민을 감금 · 투옥 · 고 문치사한 전례로 보건대 전면적 탄압을 보다 강화하 기 위한 것이라면서 반대투쟁을 전개했다. 한편 도쿄조선노동조합 제3회 대회가 열린 얼마 후인 1929년 4월 26일 도쿄조선노동조합 동부지부 를 친일협력단체인 상애회(相愛會)가 습격했다. 이 사건은 일본 경찰의 지원 아래 진행되어 오히려 그 들의 비호로 피해자인 조합원이 구속되었다. 그러나 지배계급의 직간접적인 방해는 ‘최후의 발광 이외에 아무것도 아니다’라고 하면서 관동(關東)지방조합대 표자회의는 자위단을 조직해 반동단체 상애회의 처 단을 강력히 주장했다. 이 상애회 습격에 대항하여 자위단 200여 명은 상애회 지부를 역습했다. 이 투 쟁 이후 반동단체의 박멸투쟁을 강화하며 자위책으 로 자위단 조직을 기도하고 ‘자위단은 어떤 임무를 갖고 어떻게 조직할까’,‘ 상애회를 파괴하자’는 삐라 를 살포했다. ②조선인신진회와 조선공녀(工女)보호회 일본에는 재일조선인 가운데 걸출한 아나키스트 로 제주 출신 고순흠(高順欽)이 있었다. 고순흠은 최 선명, 김태엽 등과 함께 오사카지역의 아나키즘운동 을 주도했다. 1924년 3월 오사카로 간 이후 조선인 신진회, 조선공녀보호회, 조선자유노동자연맹, 오사 카(大阪)자유노동자연맹, 자아성민보사, 조선민중사 등에서 주도적인 활동을 했다. 조선인신진회는 1926년 1월 이춘식을 회장으로 하여 출범했다. 제주출신으로 고순흠의 지도를 받은 고영회, 강기찬, 김시균 그리고 여성으로 김시숙이 활 동했다. 조선인신진회 활동 가운데 특기할 만한 것은 조직적으로 조선인중앙협의회에 가담한 일이다. 조 선인중앙협의회는 주로 아나키즘계의 조선인 단체 등이 참가했다. 주요활동으로는 1926년 순종(융희황 제)의 사망과 관련하여 『자아성(自我聲)』의 동인(同人) 과 함께 구한국융희황제 망곡식(望哭式)과 봉도회(奉 悼會)를 거행한 일을 들 수 있다. 아나키즘계열의 오사카지역 조선인단체 가운데 실제 활동이 확인되는 조직은 조선공녀보호회이다. 이 단체는 고순흠의 주도로 1925년 1월 회원 50여 명으로 결성되어, 1929년까지 활동했다. 주로 제주 출신 여공을 주 대상으로 한 조직이었다. 여기에 김 시숙을 비롯한 제주 여성이 활동했는데, 여공의 처 우개선과 권리 옹호, 분쟁의 해결에 힘썼다. 한편 장 진이 회원 30명으로 분소를 세우기도 했다. 재일조선인 노동운동과 관련해서는 방향전환기 이후 1930년대 일본의 노동운동에서 전투적 투쟁을 주도한 것이 전협이었다. 전협에는 조선인의 조직적 인 흡수를 위해 조선인위원회가 만들어지는데, 이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