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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국 스크랩 • 재일한인 독립운동사의 신조명 ⑥ 75 과 함께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1919년 졸업한 후 전라남도 진도에서 교편생활 을 하다 제주에 와서 오빠가 교편을 잡고 있던 대정 공립보통학교에서 교사생활을 했다. 1920년 강평국 은 최정숙과 함께 제주 여성 교육운동을 펼쳤다. 가 부장적인 사회에서 여성이 인간답게 살고 나라에 봉 사하려면 공부를 해야 한다고 생각했던 그는 가정형 편이 어려운 여성이 공부할 수 있도록 ‘여자장학회’ 를 만들었다.그리고 1921년에는 여성이 공부할 수 있는 강습소 ‘여수원(女修院)’을 설립했다. 1922년에 는 남녀 모두가 공부할 수 있는 명신학교를 설립하 여 학생들을 가르쳤다. 여성해방에 관심이 많았던 강평국은 1925년 『동 아일보』에 6월 1일, 7월 20일 두 차례 「여성해방의 잡감(雜感)」을 발표했다. 이 글에서 그는 지금 여성의 지위는 남성이 생사여탈권을 가진 노예이므로 여성 이 노예에서 해방되려면 배우고 경제적 독립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12월에는 최정숙과 함께 제주여자청 년회를 조직하여 여성의 권익을 위해 활동했다. 이후 그는 일본에서 항일운동을 벌였다. 강평국은 아파도 돈이 없거나, 남자 의사에게 진료받는 것을 꺼려서 병원에 갈 생각도 못하는 여성들의 건 강을 위해 여의사가 필요하다고 생각해 의사가 되기로 한 다. 그리하여 1926년 일본으로 건너가 도쿄(東京)여 자의학전문학교에 입학했다. 도쿄여자의학전문학교는 일본에서는 최초로 여성 만을 위한 의학교육기관이었다. 일본에서 여자로서 의사 자격을 얻은 최초의 인물 중 한 명인 요시오카 야오이(吉岡彌生)가 1900년 여성의 의학교육을 위해 설립한 도쿄여자의학교를 전신으로 한다. 요시오카 야오이는 20대 말에 이 학교를 설립하고 일본의 여 성 선거권 운동을 펼친 입지전적 인물로 알려져 있 다. 도쿄여자의학전문학교는 1912년 재단법인으로 설립인가를 받아 오늘날 도쿄여자의과대학에 이르 고 있다. 1912년까지는 도쿄여자의학교 졸업생들에게 면 허 부여의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지만, 재단법인이 되면서 시험 응시 기회를 가질 수 있었다. 1910년 대 여성이 일본유학을 통해 의사가 될 수 있는 유일 한 곳이었기 때문에, 한국에서는 여자 의사가 되기 위해 갈 수 있는 주요 유학처가 되었는데, 동경여자 의학전문학교가 인가된 지 2년 후 1914년 허영숙의 동지들과 함께한 강평국(가운데)젊은 시절의 강평국 타자기 조작법을 학생에게 가 르치는 강평국(오른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