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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의 독립운동가 • 문일민 · 안혜순 선생 67 한다. 도산(島山) 안창호(安昌 浩)가 ‘안여사의 음식 솜씨가 최고’라는 말을 자주 했을 정 도였다. 윤봉길(尹奉吉) 의사의 상하 이 훙커우공원(虹口公園) 폭탄 투척 사건과 관련한 일화도 전 해지고 있다. 1932년 4월 29 일 훙커우공원 의거를 앞두고 백범 김구가 안혜순에게 도시 락을 만들어달라고 요구했다. 그러나 의거 당일 도시락 하나 에는 밥과 반찬을 담지 말라는 지시가 전해졌다. 그 도시락에 는 윤의사가 일본 상하이 파견군 대장 시라카와 요시 노리(白川義則) 등에게 던질 폭탄이 담겼던 것이다. 1947년 10월 25일 남편 문일민이 중앙청 앞에서 할복 의거를 단행할 때 부인 안혜순에게 다음과 같 은 유서를 남겼다. “지아비로서 고생만 시켜 미안하며 이 몸은 벌써 나라 앞에 바친 터임을 당신도 잘 알고 있을 것인즉 너무 슬퍼하지 말고, 다만 철부지 식솔을 가냘픈 당 신에게 맡기고 떠남이 백번 천번 죄스러우나, 당신 은 사람의 뜻을 능히 감내해줄 것으로 믿으면서 굳 이 장부(丈夫)의 마지막 길을 택함을 허물하지 말기 바라며 나를 안창호 선생 무덤 옆에 묻어주시오.” 이를 통해 안혜순이 독립운동과 독립운동가 남편 문일민의 지원 등에 무척 고생을 많이 했으며, 비록 여성이었지만, 강한 의지로 역경을 헤쳐가면서 가족 들의 생활을 이끌어왔음을 알 수 있다. 실제로 그녀 는 1940년대 문일민과 임시정부를 따라 중국 쓰촨 성의 충칭까지 따라갔다가, 생활고를 이기지 못하고 3남 1녀를 데리고 국내로 돌아오고 말았다. 그리고 해방 이후 북한에 거주하다가 월남하여 서울에서 문 일민을 다시 만났던 것이다. 1967년 3 · 1여성동지회 이사와 고문 등을 역임했 다. 2006년 4월 15일 서울에서 향년 103세로 별세 했다. 국립서울현충원 애국지사 묘역 남편 문일민 묘역에 안장되었다. 정부는 그의 독립운동 공적을 공인하여 2019년 3 월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고난에 처한 한민족의 자유와 평등, 정의와 공화 등 독립운동의 가치를 실현하기 위해 고난의 역정을 헤쳐온 문일민 · 안혜순 부부독립운동가. 그들의 헌신 적 삶이 오늘에 시사하는 독립정신과 그 참된 가치 를 진지하게 성찰해보도록 하자. 국립현충원에 있는 문일민 · 안혜순 부부 합 장묘. 비석의 표기를 수정할 필요가 있다(김 학규 제공). 2023년 광복회관에서 열리고 있는 ‘이달의 독 립운동가’ 전시공간에 남편 문일민 선생과 함 께 나란히 소개된 ‘독립운동가 안혜순’ 전시 부 분(『오마이뉴스』 김경준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