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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6 2023년 12월 순국 PEOPLE  아름다운 사람들 12월의 독립운동가 등이었다. 자결 의거 당시 ‘팔판동 우거인(寓居人) 문일 민’이라는 이름으로 김구 앞으로 유서를 남겼 다. 죽기를 각오하고 음독 후 칼로 배를 갈랐으 나, 응급수술로 기적적으로 살아났다. 이러한 할복 자결의거는 당시 국내외 정세와 한민족의 진로를 바꾸기에는 역부족이었지만, 문일민의 애국충정과 피끓는 의분을 잘 보여주는 획기적 ‘의거’였다고 평가할 수 있다. 1950년 3월 29일 ‘애국애족 사상을 선양하고 애국선열의 기념사업을 추진’할 목적으로 발족한 애 국정신선양회의 이사장을 맡았다. 1953년 ‘혁명 선 열의 사적 편찬과 유가족에 대한 원호사업을 추진’하 기 위해 발족한 애국동지원호회에 참여하여 회장을 맡았다. 이후 독립운동사 편찬을 주도하여 1956년 2 월 애국동지원호회 명의로 『한국독립운동사』를 발 간하였다. 1960년 4 · 19혁명 뒤 신숙(申肅) 등과 구국연맹을 조직하여 중앙본부 부위원장을, 1963년 3월에는 독 립동지회 부회장을 맡았다. 1968년 10월 17일 75세 를 일기로 별세하기까지 광복회 부회장을 역임하였 다. 정부는 1962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수여하였다. 큰아들 문정진(文靖珍, 1910.7~?) 역시 1929년 광주학생운동에 참가한 뒤 중국으로 망명하였다. 1937~38년에 중국 중앙육군군관학교(싱즈[星子] 분교) 특별훈련반에서 수학한 뒤, 1938년 조선민 족혁명당에 가입했다. 1930년 10월 조선의용대 창 립대원으로 1942년까지 항일공작에 참여했다가, 1942~1945년 한국광복군 제1지대원으로 활동했다. 열혈지사 문일민 · 임시정부 활동 지원, 한인애국 부인회 활동 등 전개한 안혜순 지사 안혜순(安惠順)은 1903년 1월 6일 평안북도 의주 군 의주면 북하리(北下里)에서 태어났다. 1905년 출 생설도 있다(후손측 주장). ‘안혜순(安惠淳)’으로 한자 가 달리 표기되기도 한다. 어려운 가정형편으로 오 빠와 함께 중국으로 이주하였다. 1928년 중국 베이 징(北京)에서 문일민과 결혼하여 상하이(上海)에 거 주하며 독립운동에 투신한 남편을 도왔다. 대한민국임시정부 요인의 부인들로 구성된 ‘한인 애국부인회’에 참여하였다. 특히 1935년 2월 상하이 한인애국부인회 정기총회를 주도하는 등 열성적으로 활동했다. 이듬해 12월에는 한인애국부인회 간부로 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의뢰로 각종 기념일에 필요 한 기념 전단을 인쇄하여 배부하는 활동을 전개했다. 그녀는 상하이에 거주하며 겉으로 드러나는 독립 운동을 눈에 띠게 전개한 것은 아니었지만, 남편 문 일민의 내조와 임시정부 관련 활동 지원을 통해 독립 운동에 앞장섰다. 특히 상하이에 거주하면서 독립운 동가들의 식사 제공 등 음식 만드는 것을 도맡았다고 장년기의 안혜순 (국가보훈부 제공) 노년기의 안혜순 (동아일보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