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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의 독립운동가 • 문일민 · 안혜순 선생 61 을 살리는 실천적 투쟁이자 독립운동이었던 것 이다. 이에 평남도청 투탄 의거에 앞장서고, 임시 대통령 이승만의 탄핵 주도 및 일제 주구 처단, 임시의정원 의원과 임시정부 총무과장 활동, 그리고 1947년 10월 중앙청 할복 의거 등 독립 운동의 최전선에서 치열하게 투쟁했던 문일민 선생의 삶을 되돌아보고자 한다. 또 문일민 선 생의 아내로서, 한인애국부인회 회원으로서 묵 묵히 임시정부 관련 활동에 투신한 안혜순 선 생의 삶을 살펴보도록 하자. 문일민 · 안혜순 선생의 아들인 문정진 선생도 독립 운동에 헌신한 보기드문 독립운동 집안이라는 점에 서 특히 눈여겨 볼 만 하다. 항상 ‘뜨거운 청년’이었던 문일민의 생애와 독립 운동 문일민은 1894년 12월 10일 평안남도 강서군 함 종면(咸從面) 함종리(咸從里)에서 문명순(文銘純)과 안명숙(安明淑)의 2남 중 첫째 아들로 태어났다. 본 관은 남평(南平)이며, 호는 무강(武剛․ 武岡), 무리(武 利)이다. 굳세고 강한 사람, 또는 굳세고 강한 언덕 처럼 꿋꿋하게 살아가고, 끝까지 용맹하게 독립운동 에 투신하겠다는 의지를 표현한 것으로 보인다. 처 음 이름(본명)은 희석(熙錫)이었으며, 다른 이름으로 문강(文剛)·문일민(文逸民․ 文逸敏)·문현철(文賢哲 ․ 文賢 喆) 등이 있고, 중국이름은 왕량(王良)이다. 부인 안혜 순(安惠淳, 2019년 건국포장)과 장남 문정진(文靖珍, 1990년 애족장)도 함께 독립운동을 전개하였다. 어려서 한학을 공부하였고, 함일학교(咸一學校)에 서 수학하였 다. 평양에서 물산위탁 판 매에 종사하 기도 하였다. 1919년 3 · 1 운동 당시 만 세시위에 참 가 한 다 음 , 그 해 7월 남 만주 서간도 지역으로 건 너가 신흥무 관학교에 입학하여 군사훈련을 받았다. 그 뒤 남 만 주 독립운동 단체인 한족회(韓族會)에 참가하여 한족 회의 명령으로 평양에 잠입하여 애국청년회의 연락 과 조직 강화 활동을 벌이고 남만주 본거지로 복귀 했다. 1919년 12월 문일민은 대한청년단연합회에 가입 하여 별동대 대원으로 활동했다. 대한청년단연합회 주환선 화가가 그린 문일민 초상화(김경준  제공) 문일민 초상화 (유족 소장) 노년기의 문일민 선생